항목 ID | GC087006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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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魯在石 |
영어공식명칭 | Noh Jae suk |
이칭/별칭 | 노재진(魯載珍)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하강진 |
출생 시기/일시 | 1899년 7월 30일 - 노재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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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57년 4월 8일 - 노재석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2년 - 노재석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내일동 -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 357 |
거주|이주지 | 내일동 -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 171 |
활동지 |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노재석(魯在石)[1899~1957]은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에서 1899년 7월 30일 태어났다. 아버지는 노학렬(魯學烈)이다. 일명 노재진(魯載珍)이라고도 하였다.
[활동 사항]
내일동 171번지에 거주하던 노재석은 을강 전홍표(全鴻杓)의 지도를 받아 여러 동지들과 독립 만세 운동을 준비하였다. 밀양면 사무소와 부북면 사무소의 등사판을 몰래 갖고 나온 뒤 내일동 아북산으로 올라가 병풍으로 불빛을 가리고 밤새워 「독립선언서」 수천 매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여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드디어 3월 13일[음력 2월 12일] 밀양공립보통학교 앞 장터에 1,000여 명의 군중이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대형 깃발을 중심으로 모였다. 오후 1시 30분경 윤세주가 높은 곳으로 올라서서 「독립선언서」를 큰 소리로 읽었고, 이때 노재석을 비롯한 18명의 동지들과 여성 기독교인들은 「독립선언서」를 군중 속에 뿌리고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다.
독립선언서 낭독을 마친 윤세주가 태극기를 움켜쥐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자 수천 명의 군중들이 일제히 태극기를 휘날리며 조선 독립 만세 함성을 함께 울렸다. 그리고 군중들은 큰 깃발을 앞세우고 대오를 형성하여 거리를 따라 시위행진을 벌였다. 시위대 중 일부는 밀양공립보통학교로 들어가 운동장에서 만세 함성을 또다시 외쳤다. 이에 밀양에 주재하고 있던 10여 명의 헌병과 경찰 병력이 총칼을 휘두르며 군중을 해산시키려 하였으나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고, 긴급 파견된 부산 주재 일본 헌병수비대 병력이 가까스로 해산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연행되어 고문을 당하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노재석은 친구인 김소지를 비롯하여 권재호·김상득·박소종·박작지·설만진·윤방우·윤보은·윤소룡·윤치형·이장수·정동찬 등과 함께 재판을 받았는데, 1919년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열린 공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태형 90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노재석은 1957년 4월 8일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정부는 노재석의 공훈을 기려 2002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