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634 |
---|---|
한자 | 金尙伊 |
영어공식명칭 | Kim Sang-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고나은 |
출생 시기/일시 | 1898년 1월 2일 - 김상이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4일 - 김상이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보안법 제7조 위반 혐의로 태 90대 언도 |
몰년 시기/일시 | 1947년 3월 3일 - 김상이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48년 9월 27일 - 김상이 대통령령 제8호 복권령으로 복권 |
추모 시기/일시 | 2003년 - 김상이 대통령 표창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13일 - 김상이 밀양 3·13 만세운동 참여 |
출생지 | 내일동 -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 64 |
활동지 | 밀양시 - 경상남도 밀양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김상이(金尙伊)[1898~1947]는 1898년 1월 2일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에서 김명선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김상이는 고종의 장례에 참여하려고 간 경성에서 3·1운동이 발생한 것을 목격한 윤세주(尹世胄)[윤소룡]와 윤치형이 「독립선언서」를 들고 밀양으로 돌아와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실행하자 동참하였다.
밀양의 청년들은 3월 11일~12일 양일간 대형 깃발과 소형 태극기, 「조선독립신문」이라는 문서 등을 수십, 수천 매 등사하며 독립 만세 운동을 준비하였다. 밀양의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13일 내일동 시장에서 3·13 밀양 독립 만세 의거가 일어났다. 대형 깃발을 선두로 나팔을 불고, 태극기를 각자 흔들면서 외치는 “조선독립만세” 소리가 밀양 거리로 퍼져 나갔다.
김상이는 시위 당시 22세였으며, 당시의 주소지는 밀양군 밀양면 내일동 543였다. 윤세주(尹世胄)가 만세운동의 계획과 실행에 가담할 것을 제안하자 김상이는 이를 수락,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 밀양 주재 헌병과 경찰로는 진압이 불가능하자 부산에서 일본 헌병수비대 병력이 급파되고 나서야 만세 운동은 겨우 진압되었다.
재판에 회부된 김상이는 1919년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보안법 제7조 위반 혐의로 태 90대를 언도받았다. 이후 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로 의열단에 가입하고 민족혁명당 당원으로도 활동하였다. 김상이는 1947년 3월 3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48년 9월 27일 대통령령 제8호 복권령에 의하여 복권되었으며, 이후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