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1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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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同化學校 |
영어공식명칭 | Donghwa School |
이칭/별칭 | 동화중학교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72[내일동 494-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응인 |
개교 시기/일시 | 1908년 6월 5일 - 동화학교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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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시기/일시 | 1911년~1912년 - 동화학교 폐교 |
최초 설립지 | 동화학교 -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72[내일동 494-1] |
성격 | 사립 학교 |
설립자 | 윤희용 외 10명 |
[정의]
근대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에 있었던 사립 교육 기관.
[교육 목표(교훈 포함)]
동화학교(同化學校)는 새로운 지식을 가르쳐 청년을 교육하고 자주독립과 애국 사상을 고취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동화학교는 1908년 6월 5일 밀양군 노하동[현 밀양시 내일동] 옛 밀양 관아의 군관청 자리에서 개교한 사립 학교이다. 설립 발기인은 윤희용·박치복·엄세인 등 11명이며, 설립 당시 교장은 윤병연, 교감은 김용해, 학감은 윤희영이었다. 설립 당시 생도는 53명이었는데 이 중 여생도가 9명이었다.
동화학교는 1911년 말, 또는 1912년 초에 폐교된 것으로 추측된다. 공립밀양보통학교[현 밀양초등학교]에 다니던 약산 김원봉과 석정 윤세주가 일장기를 “똥구덩 속에 꽂아서” “소위 ‘천장절 경축’의 반대를 표시”한 것이 1910년 11월 3일이니 공립밀양보통학교를 자퇴하고 동화학교에 입학한 것은 그 이후이다. 김원봉이 “동화중학 2개년 동안”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아 적어도 1911년까지는 동화학교에 다닌 것으로 보인다. 최수봉이 동화학교에 다니다 “폐교가 됨에 1912년 동래 범어사 안에 있는 명정학원으로 학적을 옮겨 졸업”하였다는 기록과도 상통한다.
[교육 활동]
3대 교장 전홍표는 학생들 앞에서 우리가 목숨이 있는 동안은 강도 일본과의 투쟁을 단 하루라도 게을리할 수 없다고 가르쳤다.
[현황]
동화학교는 설립 당시 군수 김중연의 언급과 발기인 명단을 볼 때, “요호부민층(饒戶富民層) 또는 향리층 출신들이 주도적으로 관여하여 설립한 학교”로 짐작된다. 학제나 교육 과정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김원봉은 「석정동지약사」[1943]에서 “동화중학교 시절”로 회상하고 있어 보통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겸한 사립 학교일 가능성도 있다.
『미리벌의 얼』[1983]과 『밀양지』[1987]에서 “전홍표 선생이 광무 연간[1897~1906]에 동화학교를 창설하였다.”라고 언급하였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며, “전홍표 선생은 1910년 제2대 교장 윤희영의 뒤를 이어 교장을 역임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