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730
한자 全鴻杓
영어공식명칭 Jeon Heong Pyo
이칭/별칭 을강(乙江)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선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9년연표보기 - 전홍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5년 또는 1906년 - 전홍표 사립 동화학교 설립, 교장으로 재직
활동 시기/일시 1911년 - 전홍표 동화학교 폐교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3일 - 전홍표 밀양 만세 운동 지도
활동 시기/일시 1924년경 - 전홍표 밀양향교 부설 집성학교 교사
몰년 시기/일시 1928년 또는 1929년 - 전홍표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8년연표보기 - 전홍표 건국포장 추서
출생지 내이동 - 경상남도 밀양시 내이동 지도보기
활동지 동화학교 -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72[내일동 494-1]지도보기
활동지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성격 교육자|민족지사
성별
대표 경력 동화학교 교장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교육자이자 민족지사.

[가계]

전홍표(全鴻杓)[1869~1929]는 1869년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내이동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1905년 또는 1906년 무렵 전홍표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밀양 내일동에 있던 밀양부 동헌의 북쪽 군관청 자리에 초중등 교육기관인 동화학원을 설립하였다. 1910년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하자 전홍표는 학생들에게, “빼앗긴 국토를 도로 찾고 잃어버린 주권을 회복하기 전에는 우리는 늘 부끄럽고 또 언제나 비참하다.”면서, “우리가 목숨이 있는 동안은 강도 일본과의 투쟁을 게을리할 수 없다.”라고 역설하고는, “미래는 너희들의 것이다. 너희들이 분기하지 않고 대체 누가 조국 광복의 대업을 이룰 것이랴?”라고 항일 의식을 고취시켰다.

교장 전홍표의 가르침은 밀양의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쳐, 김원봉, 윤세주, 최수봉, 김상윤 등 걸출한 의열단원 배출에 기여하였다. 훗날 김원봉이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전홍표 교장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고 토로하였을 정도로, 전홍표는 밀양이 의열 투쟁의 전통을 지닌 지역이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전홍표를 위험인물로 낙인찍고 있던 일제는 한국 병탄 직후 동화학교에 폐쇄 명령을 내렸다. 동화학원이 재단법인이 아니라는 것을 구실로 삼았던 것이다. 김원봉이 나서서 기금을 모으는 등의 노력에도, 결국 1911년 동화학교는 폐교당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학교 폐쇄가 전홍표의 항일 의지를 꺽을 수는 없었다.

1919년 윤세주윤치형이 서울에서 3·1운동에 참여하고 밀양으로 돌아오자, 전홍표는 만세 시위에 나설 것을 독려하였다. 이에 3월 13일 밀양 지역의 청년들이 만세 시위를 전개하자, 전홍표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하였다. 1924년 전홍표밀양향교에 부설된 집성학교에 교사로 근무하면서, 지역 청년들을 상대로 하는 민족교육에 매진하였다. 전홍표는 1929년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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