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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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琴坪里[安城面] |
영어공식명칭 | Geumpyeong-ri[Anseong-myeo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명광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신선이 거문고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뜯는 형국이라 하여 ‘금평(琴坪)’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는 금산군에 속하였으며, 1674년(현종 15) 무주 도호부(茂朱都護府) 이안면(二安面)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궁대(弓垈)·상두(上斗)·두문(斗文)·안기(安基)·도촌(島村)·금평·장구(長久)와 상곡면의 사교(沙郊) 일부를 병합하고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로 개설하였다. 금평 마을, 궁대 마을, 두문 마을, 안기 마을, 도촌 마을 등 5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환경]
금평리는 안성면의 최동북단에 있는 두문산(斗文山)의 서록 양지 바른 언덕에 있는 고원의 평야 지대이다. 본래는 인가가 없던 평원이었는데, 고산(高山)의 화평(花坪), 금구(金溝)의 월평(月坪)과 함께 무주의 금평을 승지 삼평(勝地三坪)이라 하며, 아름답고 살기 좋은 땅을 찾아온 사람들이 우거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현황]
금평리는 동쪽은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 서쪽은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 남쪽은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 북쪽은 무주군 적상면 사산리와 접한다. 2017년 1월 현재 면적은 7.2㎢이며, 금평리, 궁대리, 두문리, 안기리, 도촌리의 5개 행정리에 198가구, 335명[남 160명/여 17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2014년 개통한 지방도 제727호선이 서쪽에서 남쪽으로 관통한다. 두문리에 있는 두람재(斗藍齋)는 1872년(고종 9) 학문과 덕망이 높은 선비들이 모여 문란한 세태를 바로잡기 위해 향약(鄕約)을 만들고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1948년에는 반남 박씨(潘南朴氏) 종중 재각(齋閣)에 중학 강습소(中學講習所)를 설립하였는데, 훗날 이를 기반으로 안성 중·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두문 마을 동구에는 여말 선초(麗末鮮初) 시기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정신으로 충절을 지킨 박힐(朴詰),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절의를 지킨 박인(朴麟)과 그의 아들 박희권(朴希權)의 충절을 기리는 반남 박씨 삼세충의비(潘南朴氏三世忠義碑)가 있다.
옛적에 참봉(參奉) 벼슬을 하던 김연(金淵)이 벼슬을 버리고 산수(山水)와 벗하고자 안기 마을로 들어와 터를 잡고 살게 되었는데, 그의 아들 김경준(金景俊)은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여 통덕랑(通德郞)에 올랐으며 문행(文行)이 탁월하여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김경준이 관직을 그만두고 안기 마을로 돌아오자 그에게 배우려는 사람들이 수없이 몰려왔다. 그때 무주 부사(茂朱府使)가 도촌 마을 앞에 양청당(兩淸堂)이라는 정사(精舍)를 지어 주고 후학을 양성하도록 권장하여 많은 선비를 배출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안기 마을에서 도촌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를 양청당 고개라고 부르는데, ‘양청당’은 김경준의 호(號)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