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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917
한자 斗籃齋
영어공식명칭 DooRamjae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덕유산로 894-7[금평리 409-3]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유연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32년연표보기 - 두람재 건립
현 소재지 두람재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덕유산로 894-7[금평리 409-3]지도보기
성격 재각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3칸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재각.

[위치]

덕유산 나들목에서 무주 방면으로 국도 제19호선을 따라가다 사전 교차로에서 좌회전 후 두문 삼거리에서 다시 좌회전을 해서 지방도 제727호선을 따라 가면 두문 마을이 보인다. 두람재(斗籃齋)는 두문 마을 회관에 못 미쳐서 좌측에 위치해 있다.

[변천]

1872년(고종 9)에 박남수(朴南壽)가 마을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을 위해, 남전 향약(藍田鄕約)을 만들어 교육을 하였으나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쇠퇴하였다. 이후 1924년 두문 마을 출신 박승화(朴勝華) 등 인사 10명이 모여 새로운 향약을 만들고, 마을 사람들의 교육을 위해 1932년에 두람재를 세웠다.

[형태]

두람재는 정면 5칸, 측면 3칸이며 함석 기와로 된 팔작지붕이고, 문은 별도로 없다. 경산(耕山) 이용우(李用雨)가 상량문(上梁文)을 짓고, 단암(丹巖) 민병승(閔丙承)과 용재(龍齋) 박승희(朴勝熺)가 기(記)를 썼다.

[의의와 평가]

향약 교육소는 오늘날 지방 자치 제도의 전신인 향약을 교육하던 곳으로, 사라져 가는 향촌 마을 주민들의 인정과 협동 정신을 고취시키는 데 의의가 있다. 재각은 제사뿐만 아니라 교육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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