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6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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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希權 |
영어공식명칭 | Bak Huigwon |
이칭/별칭 | 천경(天經),임회당(臨淮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동희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16년 - 『임회당 선생 실기』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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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58년 - 박희권 배향 숭모사 건립 |
출생지 | 금산군 - 충청남도 금산군 |
거주|이주지 | 금산군 - 충청남도 금산군 |
사당|배향지 | 도산 서원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 |
사당|배향지 | 숭모사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마장리 |
사당|배향지 | 숭모사 -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 |
사당|배향지 | 반남 박씨 삼세 충의비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908-3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반남 |
대표 관직|경력 | 사헌부 감찰 |
[정의]
조선 전기 무주 도산 서원에 배향된 문신.
[가계]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천경(天經), 호는 임회당(臨淮堂). 고려수절신(高麗守節臣)[여말 선초 성리학의 대의명분을 지켜 조선조에서 벼슬을 하지 않고 절개를 지킨 고려 말의 학자들] 박힐(朴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초산 군수를 지낸 박인(朴麟)이다. 박힐이 충청남도 금산에 들어와 은거하면서 후손들이 대대로 금산군 남일면에서 세거하였다. 박희권의 6세손 박지영이 임진왜란 때 난리를 피해 지금의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 내금 마을로 들어와 세거하였다.
[활동 사항]
박희권(朴希權)은 조선 세조(世祖) 때 사람으로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사헌부 감찰로 있던 중 단종(端宗)이 폐위되자 고향 금산으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1455년(단종 3) 아버지를 따라 진산에 있다가 세조 찬위(簒位)의 비보를 들은 아버지가 퇴관을 결심하자 이를 찬성하고 아버지와 함께 영월로 가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금산 장평으로 낙향하여 집 뒤에 단을 쌓고 단종에게 매년 제향을 올리며 절의를 지켰으며, 예류정(禮流亭)을 짓고 후진 양성에 힘썼다.
[학문과 저술]
박희권이 지은 책이 여러 권 있었다고 전하나 여러 차례 병란을 거치며 대부분 사라졌다. 집안에 내려오는 유고 및 1668년(현종 9)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가 쓴 행장(行狀) 등의 글을 모아 후손인 박해양(朴海陽)·박용서(朴龍緖)가 1916년 『임회당 선생 실기(臨淮堂先生實紀)』를 간행하였다.
[상훈과 추모]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 오도산 아래 도산 서원(道山書院)과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마장리 숭모사(崇慕祠)에 배향되었다. 도산 서원이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철거되자 1959년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 안쇠실 뒷산으로 옮기고 ‘숭모사’라고 하였다. 박힐, 박인, 박희권을 기리는 반남 박씨 삼세 충의비(潘南朴氏三世忠義碑)가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두문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안성면은 본래 금산군에 속하였는데 조선 후기 무주에 적상산 사고(赤裳山史庫)가 설치되면서 무주부(茂朱府)로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