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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장암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25 교구 본사 봉선사의 말사. 1957년에 신도 이간대(李干大)가 동화사(東和寺)를 창건하였다. 군 복무 시절부터 동화사와 인연을 맺은 승려 밀운[속명 변희준]이 제대 후 동화사 발전에 힘이 되었다. 특히 밀운은 봉선사 회주로 있던 2006년에 사유 재산을 동화사에 기증하여 사찰 중건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일반 절과 유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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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거사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 1963년 경기도 포천에서 양조장을 경영하던 김혜영이 불교에 귀의하여 현 마태사(麻太寺) 옆의 바위 굴에 들어가 백일기도를 하면서 이곳이 명당임을 깨닫고 마태사를 건립하였다. 처음에는 세 칸 건물의 법당과 삼성당만으로 시작하다가 1974년에 큰 법당을 준공하였고, 이후 신도 500여 명 규모의 사찰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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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9년부터 1580년까지 김성일이 함경도 순무어사의 임무를 수행하며, 포천 지역을 포함하여 순무 노정대로 작성한 일기. 「북정일록(北征日錄)」은 조선 전기의 정치가이자 문인이었던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1538~1593]이 1579년 9월 21부터 6개월간 ‘함경도 순무어사’의 임무를 포천 지역을 비롯한 노정대로 백성의 마음을 위로하고 달래면서 기록한 일기이다. 이를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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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의 쌍곡 송암에서 은거하던 이식이 형 이숙에게 부치는 칠언율의 한시. 「산가기금헌(山家寄琴軒)」은 조선 전기의 문신 사우정(四雨亭) 이식(李湜)[1458~1489]이 은거하던 포천의 쌍곡 송암[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에서 형 강양군(江陽君) 이숙(李潚)[1453~1499]에게 보내는 한시이다. 「산가기금헌」은 이식의 문집인 『사우정집(四雨亭集)』 권 상에 수록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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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3년 김수증이 서울을 출발하여 포천을 지나 화천 곡운동까지 여행하고 지은 기행문. 「산중일기(山中日記)」는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1624~1701]이 50세 때 1673년 4월에 서울에서 포천을 지나 강원도 화천 곡운동까지 두루 구경하고 그 아름다운 절경 등을 노래한 일기 형식의 기행문이다. 「산중일기」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계축년[1673] 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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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익이 포천 옥동산에 살던 셋째 형 이서에 대하여 지은 전기. 「삼형옥동선생가전(三兄玉洞先生家傳)」은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이 셋째 이복형 이서(李漵)[1662~1723]에 대하여 기록한 글이다. 호가 옥동 징사(玉洞徵士)이고, 자(字)가 징지(澄之)인 이서는 포천의 옥동산(玉洞山) 아래에서 살았으며, 남계(南溪) 박세채(朴世采)[1631~1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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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이남규가 포천에 새로 지은 윤장의 집인 소재(小齋)에 대하여 지은 잡기체의 재기. 「소재기(小齋記)」는 개항기의 문인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1855~1907]가 윤장(尹丈)의 부탁을 받아 경기도 포천 용정(龍井)에 새로 지은 집[‘소재’라고 이름 지음]에 대하여 써 준 잡기(雜記)이다. 「소재기」는 이남규의 문집 『수당집(修堂集)』 권 6에 수록되어 있다. 동쪽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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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7년 신광수가 포천으로 돌아가는 이중을 환송하며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송이중신은귀근포천(送彛仲新恩歸覲抱川)」은 조선 후기의 문인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1712~1775]가 과거에 합격하고 경기도 포천으로 귀향하는 이중(彛仲) 윤필병(尹弼秉)[1730~1810]을 환송하며 지은 한시이다. 「송이중신은귀근포천」은 신광수의 문집인 『석북집(石北集)』 권 8에 수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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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9년부터 1521년 사이에 이행이 평안도로 떠나는 이해를 환송하며 포천에서 지은 한시. 「송이평사해지관서(送李評事海之關西)」는 1519년부터 3년 사이에 용재(容齋) 이행(李荇)[1478~1534]이 평안도 병마평사(兵馬評事)로 부임하는 이해(李海)를 환송하며 포천에서 지은 오언율 형식의 한시이다. 「송이평사해지관서」는 이행의 문집인 『용재집(容齋集)』 권 2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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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년 조임도가 칠원 현감에서 해임되어 포천으로 귀향하는 이립을 환송하며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송칠원이사군 파관귀포천(送漆原李使君 罷官歸抱川)」은 간송(澗松) 조임도(趙任道)[1585~1664]가 칠원 현감(漆原縣監)에서 파면되어 포천으로 돌아가는 이립(李岦)을 위로하며 지은 한시이다. 「송칠원이사군 파관귀포천」은 조임도의 문집 『간송집(澗松集)』 권 1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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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양사언이 포천 수원산을 소재로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수원산(水原山)」은 포천 출신의 문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경기도 포천에 있는 수원산(水原山)을 대상으로 삼아 이를 보고 느낀 감흥을 적은 한시이다. 공북거진극(控北居辰極)[북으로 당겨져 북극성 위치에 자리하고] 경남배한경(經南背漢京)[길은 남쪽으로 한양을 등지고 있네] 야운매주일(夜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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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5년 임영이 부모와 통천으로 가는 도중 포천에 머물면서 지은 오언 고시(五言古詩). 「숙포천(宿抱川)」은 조선 후기의 문인 창계(滄溪) 임영(林泳)[1649~1696]이 부모를 모시고 강원도 통천으로 우거(寓居)[임시로 남의 집이나 타향에서 삶]하러 가는 도중 날이 저물자 경기도 포천의 어느 집에서 숙박하며 지은 한시이다. 광야생비풍(曠野生悲風)[빈 들녘에 슬픈 바람 일어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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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년 이수광이 안변 부사로 부임하러 가던 중 포천에 묵으면서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숙포천백형댁(宿抱川白兄宅)」은 조선 중기 문신인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1563~1628]이 1605년 1월 함경도 안변 부사(安邊府使)로 임명되어 임지(任地)로 가는 도중 경기도 포천에서 묵으면서 감회를 적은 한시이다. 「숙포천백형댁」은 이수광의 문집인 『학성록(鶴城錄)』에 실려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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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0년 김시습이 영평현을 지날 때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숙포천인가(宿抱川人家)」는 조선 전기의 문신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 풍악산[금강산]을 향해 가던 중 날이 저물자 영평현으로 들어가 민가에서 묵으며 느낀 감흥을 적은 한시이다. 「숙포천인가」는 김시습의 문집 『매월당집(梅月堂集)』 권(卷) 10에 수록된 「유관동록(游關東錄)」에 수록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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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이식이 대허에게 포천 생활을 회상하며 지어 보낸 칠언 율시의 한시. 「술회 증대허(述懷贈大虛)」는 조선 전기의 문신 사우정(四雨亭) 이식(李湜)[1458~1489]이 대허(大虛)에게 빈한하였던 경기도 포천 생활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며 적어 보낸 한시이다. 「술회 증대허」라는 시를 받은 대허는 조선 전기의 문장가인 최하림(崔河臨)[1455~1486]으로 호는 대허당(大虛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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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허전이포천의 친척 집을 방문하여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십일월왕포천족형가(十一月往抱川族兄家)」는 조선 후기의 문신 성재(性齋) 허전(許傳)[1797~1886]이 1845년 11월에 경기도 포천의 친척 형의 집을 방문하여 지은 한시이다. 「십일월왕포천족형가」는 허전의 문집 『성재집(性齋集)』 권 1에 수록되어 있다. 영문악수소개안(迎門握手笑開顔)[맞이하는 문에서 얼굴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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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년 성현이 포천 안기역의 중수를 기념하여 지은 기문. 「안기역 중수기(安奇驛重修記)」는 조선 전기의 문신 용재(慵齋) 성현(成俔)[1439~1504]이 경기도 포천현에서 북쪽으로 2㎞ 정도 떨어져 있는 안기역[현재 경기도 포천시 신읍동]을 중수(重修)[건축물이 낡고 헌 것을 손질하며 고침]하고 이를 기념하여 지은 글이다. 「안기역 중수기」에서 성현은 찰방(察訪) 윤지(尹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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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박제가가 영평 현령으로 있을 때, 광릉에서 경기 감사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알순상우광릉 귀로게포천남현(謁巡相于光陵 歸路憩抱川南峴)」은 조선 후기의 문신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1750~1805]가 경기도 영평 현령(永平縣令)으로 재직[1797년(정조 21) 9월부터 1800년(순조 즉위년) 9월까지]하고 있을 때, 광릉(光陵)에서 경기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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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호민이 포천 출신의 화가 어몽룡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어포천몽룡만(魚抱川夢龍挽)」은 조선 시대의 문인 오봉(五峯) 이호민(李好閔)[1553~1634]이 경기도 포천 출신의 선비 화가인 어몽룡(魚夢龍)[1566~1617]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한시이다. 어몽룡은 본관이 함종(咸從)이고, 자는 견보(見甫)이며, 호는 설곡(雪谷)·설천(雪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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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시발이 포천 출신의 화가 어몽룡의 묵매 그림을 보고 느낀 감흥을 적은 한시. 「어포천묵매도행(魚抱川墨梅圖行)」은 조선 중엽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벽오(碧梧)인 이시발(李時發)[1569~1626]이 경기도 포천 출신의 선비 화가인 어몽룡(魚夢龍)[1566~1617]의 묵매(墨梅) 그림을 노래한 행체시(行體詩)이다. 어몽룡은 본관이 함종(咸從)이고,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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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최익현이 포천 본가에 있는 큰아들 최영조에게 보낸 편지. 「여영조(與永祚)」는 조선 후기의 문신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1833~1906]이 1905년 5월 6일에 경기도 포천의 본가[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가채리]에 있는 큰아들 최영조(崔永祚)에게 쓴 편지이다. 영조(永祚)에게 보냄 - 을사년[1905] 5월 6일 떠나간 뒤에 소식이 없으니 우울함을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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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내리에 있는, 조선 전기 열녀 안동 김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열녀(烈女) 안동 김씨(安東金氏)는 세조 때 성균관 사성(成均館司成)을 지낸 홍의달(洪義達)의 처이다. 그녀의 행적에 대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상낙백(上洛伯) 김사형(金士衡)의 손녀로 사성(司成) 홍의달에게 시집갔다. 홍이 죽고 자식이 없었으나, 상사(喪事)에 조금도 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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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있는 조선 후기 영평군 이경응 부부의 합장묘. 영평군(永平君) 이경응(李景應)[1828~1901]은 고종 연간의 문신으로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의 둘째 아들이자 철종(哲宗)의 형이다. 주요 벼슬은 1882년 판돈령부사를 역임하였고, 1895년 영돈령원사(領敦寧院事)를 지냈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의정부에서 포천으로 가는 국도 43호선 포천시 선단 4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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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영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포천에 파견된 관리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영평리 선정비(永平里善政碑)는 모두 5기로 포천시 영중면 영평리 주변에 산재하던 비와 그린피아 모텔 공사 중 발견된 비를 모아 영평 초등학교 앞으로 옮겨 다시 세운 것이다. 이 부근은 본래 영평현의 관아 터로 추정된다. 영평리 선정비는 포천에서 연천군 전곡으로 가는 국도 37호선 옆 영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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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포천동에 있는 조선 후기 오백주 부부의 묘와 묘비. 오백주(吳伯周)[1643~1719]는 본관이 보성(寶城)이며, 자는 국경(國卿)이다. 23세에 무과에 합격하고 어영군교(御營軍校)에 보임되었다. 뛰어난 무예로 왕의 사랑을 받아 절충(折衝)·첨지(僉知) 등을 거쳐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다. 개천 군수(价川郡守)·노강 첨사(老江僉使) 등을 역임하였고, 마지막에 자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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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읍동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 『봉선사 본말사 약지(奉先寺本末寺略誌)』에 따르면 왕산사(王山寺)의 창건주는 877년(헌강왕 3년)에 도선 국사(道詵國師)이나 창건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조선 시대에 들어 1572년 승려 청암(靑巖)과 백운(白雲)이 재건하였고, 1627년 승려 청산(靑山)과 무영(無影)이 중창하여 왕산사라고 하였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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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유동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 원통사(圓通寺)의 창건과 관련된 기록은 전혀 없다. 다만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경기도 영평현(永平縣) 불우(佛宇)조에 “원통사 재청계산(圓通寺 在淸溪山)[원통사가 청계산에 있다]”이라 하였고,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의 영평 원통사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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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 유경선 부부의 합장묘. 유경선(柳敬先)[1519~1575]의 자는 흠중(欽仲)이고,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1553년 관사 별시(觀射別試) 병과(丙科)에서 1등으로 합격하였다. 주요 벼슬은 도총부 도사(都摠府都事)[1559]·제주 판관(濟州判官)[1562]·양산 군수(梁山郡守)[1564] 등을 역임하였고, 1569년 한성부 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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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기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명뢰 부부의 합장묘와 묘비. 유명뢰(兪命賚)[1652~1712]는 본관이 기계(杞溪)이고, 자는 필경(弼卿)이며, 호는 자교당(慈敎堂)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어 어머니 은진 송씨(恩津宋氏)에게 학문을 배웠는데 ‘자교당’이란 당호는 스승 송시열이 지어 준 것이다.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송시열이 세상을 뜨자 벼슬길을 포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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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자작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유인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유인선(柳仁善)[1492~?]의 자는 공숙(公叔)이고,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1540년 김안국(金安國)[1478~1543] 등의 천거로 잠시 사산감역(四山監役)을 맡았다.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효도하고, 아우 유은선(柳恩善)·유예선(柳禮善)·유지선(柳智善)·유정선(柳貞善) 등과 우애 좋게 함께 살아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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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유지선 부부의 묘와 묘갈. 유지선(柳智善)[1498~1577]의 자는 명중(明仲)이고,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유연(柳演)의 아들이자 효자 유인선(柳仁善)의 아우이다. 1522년(중종 17)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31년 식년 문과(式年文科)의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이후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등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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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 3리에 있는 조선 전기 의성군 이채 부부의 합장묘. 의성군(誼城君) 이채(李寀)[1411~1493]는 조선 전기의 왕족이자 학자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의 맏아들로 1424년(세종 6) 의성군(誼城君)에 봉해졌다. 왕족이면서도 학문에 밝아 경사(經史)에 능통하였고, 1489년(성종 20) 최고 관등인 현록대부(顯祿大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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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영의정 이경여의 묘와 신도비. 이경여(李敬輿)[1585~1657]는 본관이 전주(全州)이며, 자는 직부(直夫)이고, 호는 백강(白江)·봉암(鳳巖)이다. 아버지는 목사 이수록(李綏祿)[1564~1620]이며, 어머니는 송제신(宋濟臣)의 딸이다. 1601년[선조 34] 사마시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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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지현리에 있는 조선 전기 이국주 부부의 합장묘. 이국주(李國柱)[1487~1556]는 1525년(중종 20) 사마시에 합격한 뒤 의장고(儀仗庫) 낭청(郞廳), 제용감(濟用監) 주부(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70세에 강원도 이천 현감(伊川縣監)으로 재직 중 사망하였다. 사후에 아들 이호민(李好閔)[1553~1634]이 크게 현달하여 연선 부원군(延善府院君)에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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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금현리에 있는 조선 전기 시림 부원군 이몽량의 묘와 신도비. 이몽량(李夢亮)[1499~1564]은 본관이 경주(慶州)이며, 자는 응명(應明)이다. 1522년(중종 17) 생원·진사시에 급제하였고, 1528년 명경시(明經試)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에 제수되었다. 그 후 동지중추부사·한성부 판윤을 거쳐 우참찬에 이르렀다. 부인이 둘인데 첫째 부인 함평 이씨(咸平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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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민장 부부의 묘와 묘비. 이민장(李敏章)[1620~1694]은 효종 때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이경여(李敬輿)의 큰아들이다. 벼슬은 음보(蔭補)로 1651년 전설사 별검(典設司別檢)에 임명된 후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위솔(衛率)과 익찬(翊贊),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 사직서령(社稷署令) 등을 역임하였다. 또 연안(延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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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가양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 이사검 부부의 합장묘. 이사검(李思儉)[1381~1446]은 세종 대 무신으로 본관이 양성(陽城)이며, 개성 유후 이옥(李沃)의 아들이다. 1405년 무과에 급제해 사직(司直)을 시작으로 황해도 첨절사·경상 좌도 처치사·공조 참판 등의 벼슬을 하다가 1435년 동지중추부사를 마지막으로 역임하였다. 시호는 공소(恭昭)이고, 배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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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정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시백 부부의 묘와 묘비. 이시백(李時白)[1571~1649]의 자는 군실(君實)이고, 호는 수우당(守愚堂)이다. 1609년(광해군 1) 사마시에 합격하고 벼슬길에 나가갔다가 인목 대비(仁穆大妃) 폐위 사건으로 사직하였다. 병자호란 중에는 감찰로 왕을 강화도로 모셨다. 1630년(인조 8) 충청도 영동 현감(永同縣監)으로 나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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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 2리에 있는 1943년 조선 후기 무신 이중로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중로(李重老)[1577~1624]는 본관이 청해(靑海)로 자는 진지(鎭之),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1605년(선조 38) 무과에 합격한 뒤 선전관(宣傳官)을 시작으로 내외직을 두루 지내다가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책록되고 청흥군(靑興君)에 봉해졌다.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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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택 부부의 묘와 묘비. 이택(李䕪)[1574~1644]은 본관이 전주(全州)이고, 자는 무중(茂仲)이다. 아버지는 군수 이희간(李希榦)이고, 어머니는 선조(宣祖) 때 영의정을 지낸 사암(思庵) 박순(朴淳)[1523~1589]의 외동딸이다. 박순이 말년 포천에 배견와(拜鵑窩)를 짓고 살다가 세상을 떠나자 이택이 시묘하였다. 이택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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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항복의 묘. 이항복(李恒福)[1556~1618]은 본관이 경주(慶州)이고, 자는 자상(子常)이며, 호는 필운(弼雲)·백사(白沙)·동강(東岡) 등이다. 1580년(선조 13) 알성 문과에 급제하여 1589년 예조 정랑으로 정여립(鄭汝立) 모반을 처리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병조를 맡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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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평 대군 이요의 묘와 신도비. 인평 대군(麟坪大君) 이요(李㴭)[1622~1658]는 본관이 전주(全州)이고, 자는 용함(用涵)이며, 호는 송계(松溪)이다. 인조의 셋째 아들이자 효종의 동생으로 1630년 인평 대군에 봉해졌다. 1640년 볼모로 청나라에 갔고, 1650년부터 네 차례나 사은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외교관이었다. 저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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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평 대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인평 대군(麟坪大君) 이요(李㴭)[1622~1658]는 조선 후기 왕족으로 자는 용함(用涵), 호는 송계(松溪)이다. 인조의 셋째 아들이자 효종의 동생으로 1630년 인평 대군에 봉해졌다. 저서로 『송계집(松溪集)』·『연행록(燕行錄)』·『산행록(山行錄)』 등이 있고, 사후 효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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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종실 인흥군 이영의 묘와 신도비. 인흥군(仁興君) 이영(李瑛)[1604~1651]은 조선 후기의 왕족으로 자는 가온(可韞)이고, 호는 취은(醉隱)·월창(月窓)이다. 선조와 정빈 민씨(靜嬪閔氏) 사이에 태어나 7세 때인 1610년(광해군 2) 인흥군에 봉해졌다. 1645년 종부시·사옹원 도제조가 되었고, 1649년(효종 즉위년) 사은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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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흥군의 묘계 비. 인흥군(仁興君) 이영(李瑛)[1604~1651]은 조선 후기 왕족으로 자는 가온(可韞)이고, 호는 취은(醉隱)·월창(月窓)이다. 선조와 정빈 민씨(靜嬪閔氏) 사이에 태어나 7세 때인 1610년(광해군 2년) 인흥군에 봉해졌다. 1645년 종부시·사옹원 도제조가 되었고, 1649년(효종 즉위년) 사은사로 청나라에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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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 자인사(慈仁寺)는 김상수[법명 해공(海空)]가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에 창건하였다가 1964년 현 위치인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 71번지에 약 5.4m[18척]의 석고 미륵불을 조성하면서 이전한 절이다. 산정 호수 뒷산인 명성산(鳴聲山)에 자리한 자인사는 명당의 상징이자 궁예와 왕건의 전설이 깃든 잿터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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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계 대원군 이광 부부의 합장묘.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 이광(李㼅)[1785~1841]은 조선 후기 왕족으로 그의 가계는 영조(英祖)[증조할아버지]→사도 세자[할아버지]→은언군(恩彦君)[아버지]→전계 대원군→철종[아들]으로 이어진다. 이광은 부모와 형 상계군(常溪君) 부부의 죄에 연좌되어 강화도 교동으로 쫓겨나 빈농으로 살았다. 사후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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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엽 이의건이 포천의 백운사를 다시 찾은 후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중심백운사(重尋白雲寺)」는 조선 중엽의 문인 동은(峒隱) 이의건(李義健)[1533~1621]이 경기도 포천에 있는 백운사(白雲寺)를 또다시 찾아가서 그때의 감회를 적은 한시이다. 「중심백운사」는 이의건의 문집 『동은고(峒隱稿)』 권 30 별고(別稿)에 수록되어 있다. 고사거승소(古寺居僧少)[오랜 절에 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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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25 교구 본사 봉선사의 말사. 흥룡사(興龍寺)의 연혁이 나온 자료는 『백운산 내원사 사적(白雲山內院寺事蹟)』[1706년]과 『백운사 중수기(白雲寺重修記)』[1786년], 『봉선 본말사지(奉先本末寺誌)』[1927년] 등이다. 이들 자료에 따르면 흥룡사는 신라 시대 도선 국사[827~898]가 창건한 내원사(內院寺)였고, 고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