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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808
한자 李重老神道碑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2리 402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엄익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577년 - 이중로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624년 - 이중로 사망
건립 시기/일시 1943년 8월 - 이중로 신도비 건립
현 소재지 이중로 신도비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 2리 402지도보기
성격
양식 옥개 방부형
관련 인물 이중로(李重老)[1577~1624]|조경(趙絅)[1586~1669]
재질 오석(烏石)
크기(높이 181㎝[비신]
너비 68㎝[비신]
두께) 37㎝[비신]

[정의]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 2리에 있는 1943년 조선 후기 무신 이중로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개설]

이중로(李重老)[1577~1624]는 본관이 청해(靑海)로 자는 진지(鎭之),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1605년(선조 38) 무과에 합격한 뒤 선전관(宣傳官)을 시작으로 내외직을 두루 지내다가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책록되고 청흥군(靑興君)에 봉해졌다. 1624년(인조 2) 평안 병사(平安兵使)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키자 경기강원등도좌 방어사(京畿江原等道左防禦使)로 임명되어 난을 진압하다가 예성강 상류 저탄(猪灘)에서 전사하였다. 포천 청해사(靑海祠)에 제향되었고, 둘째 아들 이문위(李文偉)의 현달로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부인 동래 정씨(東萊鄭氏)는 우의정 정언신(鄭彦信)[1527~1591]의 딸이다.

[건립 경위]

이중로 신도비(李重老神道碑)인조 때 판서를 역임한 문간공(文簡公) 조경(趙絅)[1586~1669]에게 비문을 받았다가, 319년 뒤인 1943년 8월에 후손들이 이중로의 덕을 기리고자 세웠다.

[위치]

이중로 신도비는 포천에서 지방도 87호선을 따라 창수면으로 가다가 창수 초등학교 진입로를 조금 지나 추동 1교에서 좌회전하여 추동 2교에 도달하기 바로 전 도로 우측에 자리한다. 주소지는 포천시 창수면 추동 2리 402번지이다.

[형태]

옥개 방부형(屋蓋方趺形)의 신도비로 비신(碑身)은 높이 181㎝, 너비 68㎝, 두께 37㎝이며 재질은 오석(烏石)이다.

[금석문]

비문을 찬자한 조경이괄의 난을 평정하다 전사한 그에 대하여 “……공만은 홀로 해를 꿰뚫는 충성으로 전장에서 죽는다는 정신으로 분발하여 군사의 강약을 고려하지 않고 칼날을 무릅쓰고 나아감을 죽어서야 그만두었으니 그 충용(忠勇)과 의열(義烈)은 천고(千古)에 드문 일이다. ……”라고 극찬하였다.

[현황]

이중로 신도비는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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