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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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先史 |
영어공식명칭 | Pre-historic Period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
시대 | 선사/선사 |
집필자 | 방용철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의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초기 철기 시대 등 압독국 등장 이전의 역사.
[개설]
선사 시대는 인간이 문자(文字)로 기록을 남기기 이전의 시대를 의미하며, 역사(歷史) 이전의 시간을 총칭한다. 따라서 경상북도 경산 지역의 선사 시대는 압독국(押督國)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등장한 서기 102년 이전까지를 최대한의 범위로 포함할 수 있다.
[석기 시대]
선사 시대는 문화유적지 및 출토유물의 조사를 통해서만 규정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경산 지역에서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 흔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인접한 대구 지역의 관련 유적과 경산 지역의 지형 및 지질 여건 등을 고려하면 추후 발굴조사를 통해 석기 시대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은 크다고 생각된다.
[청동기 시대]
경산 지역에서 조사된 청동기 시대 유적은 고인돌[지석묘(支石墓)], 선돌[입석(立石)] , 주거지(住居地), 무문토기(無紋土器) 산포지(散布地) 등이 다수 있다. 경산 지역은 금호강(琴湖江)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오목천 및 남천 등 지류(支流)가 뻗어있어 풍부한 수자원을 제공한다. 또한 하천 주변으로는 비옥한 충적평야와 거주 요건이 뛰어난 구릉성 지형이 발달하여 일찍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환경을 바탕으로 조영동에서는 다량의 무문토기와 석기 조합이 출토되었고, 진량면·압량면·대동 등 금호강변 일대에는 무문토기 산포지가 다수 확인되었다. 대정동·현흥리·교촌리·고죽리에서는 약 9개의 선돌이 보고되었으며, 용성면·하양읍·와촌면·남천면·자인면·남산면 등에는 고인돌이 다수 확인되었다. 마곡리·삼성리·가야리 등에서는 지석묘와 주거지 등이 함께 조사된바 있다. 또한 서부동에서는 대규모의 청동기 시대 취락 유적이 조사되어 큰 주목을 받았다.
경산 지역의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고인돌과 주거지 유적이다. 경산 지역에서 고인돌은 최근까지 약 253기로 보고되었으며, 사실상 경산시 전역에 분포하고 있다. 수계상 오목천과 남천의 상류 일대에 밀집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행정구역상 용성면에 가장 집중되어 총 148기가 분포하고 있다. 용성면을 제외하면 고산[대구광역시 수성구 편입] 지역, 남천 지역, 자인 지역, 남산 지역으로 크게 네 군데 군집을 이루는 양상을 보인다.
청동기 시대 주거지 유적은 조사 성과가 부족한 편이다. 청동기 시대 이른 시기에는 약 10동 이내의 주거지가 모여 작은 마을을 이루다가 점차 30동 이상이 모여 큰 규모를 형성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30동 이상의 주거지가 모여 마을을 이룬 곳은 경산 옥곡동 유적이 대표적이다. 반면 청동기 시대 후기로 접어들면서 주거지 군집은 다시 규모가 줄어드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생활 양식이나 주거 양식이 변화한 까닭이 아닐까 짐작된다. 청동기 시대 주거지의 군집 흐름은 인근 대구 지역과도 동일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어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청동기 시대를 지난 후 초기 철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경산 지역에는 임당동·조영동·영남대학교 부지 일대에 두드러진 유적지가 형성되었다. 아마도 이 무렵부터 본격적인 인간 집단의 발전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