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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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에 거주하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1847년경 간행된 조진관의 시문집. 조진관(趙鎭寬)[1739년~1808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양이며, 자는 유숙(裕叔), 호는 가정(柯汀)이다. 아버지는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들여와 재배한 조엄(趙曮)으로 이조판서를 역임했다. 1762년(영조 38) 사마시에 합격하고, 1771년에 의금부 도사가 되었다. 1775년 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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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역원. 원(院)은 고려·조선 시대에 출장한 관원들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 시설이지만, 상고(商賈)나 여행자의 숙식소로 활용되기도 하였으며,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한 기능을 하였다. 공덕원(功德院)이 언제 설치되고 폐치되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전하는 초기 경기도의 117개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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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산(安山). 자는 여삼(汝三). 고려 시중 김위(金渭)의 후손으로 김정경(金定卿)의 8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좌승지에 추증된 김찬(金讚)이고, 아버지는 호조 참판에 추증된 김성대(金聲大)이다. 영조 연간 지중추부사를 지낸 김상두(金相斗)의 백부(伯父)이다. 김석명(金錫命)[1642~1717]은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연곡리에서 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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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창협과 아우 김창흡이 쓴 만사(挽詞)와 별장(別章)을 뽑아 모은 책. 김창협(金昌協)[1651~1708]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삼주(三洲)이다.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고, 나성두(羅星斗)의 외손이며,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동생이다. 1669년(현종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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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연곡리에 있는 김성대(金聲大) 등을 배향한 사당. 동음사는 안산 김씨 선조인 촌로(村老) 김성대와 그의 동생 반성재(反省齎) 김성발(金聲發), 동구(東丘) 김성옥(金聲玉) 및 청풍 김씨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默) 등 네 명을 봉향한 사당이다. 김성대의 자는 이원, 호는 율강·촌로이다. 부모에게 극진히 효도하였으며 72세 때 진사시에 응시하였을 때 숙종이 제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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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字)는 공숙(公叔). 아버지는 진사 류연(柳演)으로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동생은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류지선(柳智善)이다.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류전(柳㙉; 동생 류예선의 아들)의 백부이다. 류인선(柳仁善)[1492~?]은 포천현 서쪽 자작촌[지금의 포천시 자작동]에서 태어나고 생활하였다. 5형제 중 맏이로, 동생인 류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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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字)는 숙윤(叔胤). 할아버지는 명종 때 효우비를 받은 류인선(柳仁善)이고,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류첩(柳堞)이다. 동생으로 임진왜란 때 효행으로 정표를 받은 류홍서(柳弘緖)가 있다. 류찬서(柳纘緖)는 포천현 서쪽 자작촌[지금의 포천시 자작동]에서 태어나 생활하였다. 임진왜란 때 동생 류홍서가 어머니 윤씨 부인을 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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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字)는 계윤(季胤). 할아버지는 효우비를 받은 류인선(柳仁善)이고,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류첩(柳堞)이다. 형은 임진왜란 때 효행으로 정표를 받은 류찬서(柳纘緖)이다. 류인선의 동생 류지선의 아들 류성(柳城)의 양자로 들어갔다. 류홍서(柳弘緖)는 포천현 서쪽 자작촌[지금의 포천시 자작동]에서 태어나고 생활하였다. 임진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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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에 있는 1950년 국군 제9연대가 북한군의 도하를 저지하였던 곳. 국군 제9연대 2대대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4시간 동안 홀로 싸우고 있었고, 전방의 분산 병력을 수습하면서 북만세의 급편 방어 진지를 고수하고 있었다. 제9연대 주력은 2대대를 지원하기 위해 6월 25일 아침 일찍 주둔지를 출발하여 북상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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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옹주의 태실. 만세교리 태봉(萬歳橋里胎封)은 1738년(영조 14)에 태어난 영조의 후궁 소생의 옹주 아기씨(翁主阿只氏)의 태실(胎室)이다. 금표(禁標)에 의하여 엄격하게 보호를 받고 있던 이 태실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서 문화재 조사라는 명목 아래 옹주의 태를 담았던 태 항아리와 지석(誌石)이 도굴되었고, 현재는 표석과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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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 2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옹주의 태실. 무봉리 태봉(茂峯里胎封)은 1735년(영조 11)에 태어난 영조의 후궁 소생의 옹주 아기씨(翁主阿只氏)의 태실(胎室)이다. 금표(禁標)에 의하여 엄격하게 보호를 받고 있던 이 태실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서 문화재 조사라는 명목 아래 옹주의 태를 담았던 태 항아리가 도굴되었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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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역원. 원(院)은 고려·조선 시대에 출장한 관원들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 시설이지만, 상고(商賈)나 여행자의 숙식소로 활용되기도 하였으며,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한 기능을 하였다. 벽탄석원(碧呑石院)이 언제 설치되고 폐치되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전하는 초기 경기도의 117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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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 유득공이 「어제석왕사비문」을 받들고, 석왕사로 향하는 길에 포천을 지나며 읊은 오언 율시의 한시. 「봉어제석왕사비문과포천(奉御製釋王寺碑文過抱川)」은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1748~1807]이 정조(正祖)가 지은 「어제석왕사비문(御製釋王寺碑文)」을 받들고, 함경도 안변(安邊)의 석왕사(釋王寺)로 향하는 길에 지난날 포천 현감으로 재직[1785(정조 9)~17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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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2년 간행된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인 김창흡의 시문집. 김창흡(金昌翕)[1653~1722]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자익(子益), 호는 삼연(三淵)이다.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자이자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셋째 아들, 이단상(李端相)의 문하이다. 과거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친명(親命)으로 응시하여 1673년(현종 14) 진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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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시중(施中). 증조할아버지는 서고(徐固)이고, 할아버지는 서해(徐嶰)이며, 아버지는 약봉(藥峰) 서성(徐渻)이다. 어머니는 목사 송녕(宋寧)의 딸인 여산 송씨(礪山宋氏)이고, 부인은 수의부위(修義副尉)를 지낸 김희(金僖)의 딸인 광주 김씨(廣州金氏)이다. 형은 만사공(晩沙公) 서경우(徐景雨)이다. 서경수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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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우경(虞卿), 호는 약허(若虚). 증조할아버지는 서형리(徐亨履)이고, 할아버지는 서문도(徐文道)이다. 아버지는 선공감 감역을 지낸 서종신(徐宗愼)이다. 어머니는 김회영(金會英)의 딸이다. 아들은 서효수(徐孝修)이다. 서명구(徐命九)[1692~1745]는 1717년(숙종 43)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가 되었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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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사집(士執), 호는 청성(靑城). 할아버지는 성몽규(成夢奎)이고, 아버지는 내섬시 직장, 장수도 찰방 등을 지낸 성효기(成孝基)이다. 어머니는 유시진(柳始震)의 딸인 문화 유씨(文化柳氏)이며, 부인은 이덕로(李德老)의 딸인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동생은 성대집(成大集)이며, 아들은 성해응(成海應)이다. 성대중(成大中)[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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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왕족으로 포천에 묻힌 인평 대군 이요의 시문집. 인평 대군(麟坪大君) 이요(李㴭)[1622~1658]는 조선 후기 왕족으로 포천에 묻혔다. 본관은 전주, 이름은 요(㴭), 자는 용함(用涵), 호는 송계(松溪), 인조의 셋째아들, 효종의 동생이다. 1630년 인평 대군에 봉해졌다. 1640년 볼모로 심양에 갔다가 돌아온 이후, 1650년부터 네 차례에 걸쳐 사은사로 청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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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계인(季仁). 증조할아버지는 예조 참의 송극인(宋克認)이고, 할아버지는 좌승지 송시철(宋時喆)이다. 아버지는 간성 군수 송광속(宋光涑)이고, 외할아버지는 영의정 김수흥(金壽興)이다. 아내는 심호(沈浩)의 딸이고, 아들은 송준명(宋準明)이며, 형제로 송징설(宋徵卨)과 송징이(宋徵履) 등이 있다. 송징계(宋徵啓)[1690~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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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인 송징은의 시문집. 송징은(宋徵殷)[1652~1720]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본관은 여산, 자는 질부(質夫), 호는 약헌(約軒), 현감 송광순(宋光洵)의 아들, 박세채(朴世采)의 문하이다. 1675년(숙종 1) 사마시에 합격, 1689년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대사간·이조참의·대사성·개성 유수·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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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직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여성군 이즙의 묘. 여성군(礪城君) 이즙(李楫)[1668~1731]은 인조(仁祖)의 고손(高孫)으로, 생부는 영창군(瀛昌君) 이심(李沈)이고 화천군(花川君) 이비(李淝)에게 입양되었다. 왕희지(王羲之)와 왕헌지(王獻之)의 필법을 터득하여 서예에 뛰어나고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영조 대에는 청에 주청사(奏請使)로 가서 왕세자의 책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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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최익현이 포천 본가에 있는 큰아들 최영조에게 보낸 편지. 「여영조(與永祚)」는 조선 후기의 문신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1833~1906]이 1905년 5월 6일에 경기도 포천의 본가[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가채리]에 있는 큰아들 최영조(崔永祚)에게 쓴 편지이다. 영조(永祚)에게 보냄 - 을사년[1905] 5월 6일 떠나간 뒤에 소식이 없으니 우울함을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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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포천 지역의 교통 통신 시설 및 숙박 시설에 대한 총칭. 역원(驛院)은 경기도 지역에 있던 교통 통신 및 숙박 시설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포천 지역의 경우 함흥으로 가는 대로(大路)에 위치한 관계로 여러 역원이 설치되었다. 포천현에는 안기역(安奇驛)·벽탄석원(碧呑石院)·공덕원(功德院) 등이, 영평현에는 양문역(梁文驛)이 설치되었다. 이후 조선 후기에 송우참(松隅站)·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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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박제가가 포천의 솔재에서 현등산을 바라보며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유포천송치 망현등산(踰抱川松峙望懸燈山)」은 조선 후기의 문신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1750~1805]가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명덕리와 군내면 상성북리를 이어주는 솔재를 넘어가다가 바라보이는 현등산(懸燈山)[운악산]의 풍광을 묘사한 한시이다. 박제가는 박학한 학자이자 동시에 이덕무(李德懋)[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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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여인(汝人), 호는 아재(雅齋). 아버지는 도정(都正)을 지낸 유언탁(兪彦鐸)이다. 조선 후기 뛰어난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유한준(兪漢雋)이 사촌 동생이다. 유한소(兪漢蕭)[1718~1769]는 음직으로 통덕랑(通德郞)에 올랐으며, 1740년(영조 16) 과거에 급제한 뒤 세자시강원에서 설서와 사서, 필선을 역임하고 병조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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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평 대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인평 대군(麟坪大君) 이요(李㴭)[1622~1658]는 조선 후기 왕족으로 자는 용함(用涵), 호는 송계(松溪)이다. 인조의 셋째 아들이자 효종의 동생으로 1630년 인평 대군에 봉해졌다. 저서로 『송계집(松溪集)』·『연행록(燕行錄)』·『산행록(山行錄)』 등이 있고, 사후 효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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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계 대원군 이광 부부의 합장묘.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 이광(李㼅)[1785~1841]은 조선 후기 왕족으로 그의 가계는 영조(英祖)[증조할아버지]→사도 세자[할아버지]→은언군(恩彦君)[아버지]→전계 대원군→철종[아들]으로 이어진다. 이광은 부모와 형 상계군(常溪君) 부부의 죄에 연좌되어 강화도 교동으로 쫓겨나 빈농으로 살았다. 사후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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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유숙(裕叔), 호는 가정(柯汀). 증조할아버지는 돈령부 도정 조도보(趙道輔)이고,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조상경(趙尙絅)이며, 아버지는 역시 이조 판서를 지낸 조엄(趙曮)이다. 어머니는 홍현보(洪鉉輔)의 딸인 풍산 홍씨(豊山洪氏)이고, 부인은 홍익빈(洪益彬)의 딸인 남양 홍씨(南陽洪氏)이다. 3남 4녀를 두었는데, 큰아들인 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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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조태억이 포천으로 가는 도중에 즉석에서 입으로 부르며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출포천 도중구호(出抱川途中口號)」는 조선 후기의 문신 겸재(謙齋) 조태억(趙泰億)[1675~1728]이 포천으로 출발하여 가는 도중에 입에서 나오는 대로 즉흥적으로 읊은 한시이다. 조태억은 경종 대에 문형(文衡)과 정승(政丞)을 지낸 소론(少論)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왕세제(王世弟) 대리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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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에 있는 유응부(兪應孚)와 이어(李王+於), 양치(楊治)를 배향하기 위해 설치한 조선 후기 제단. 1746년(영조 22) 사육신 중의 한 명인 유응부의 제단을 설치하면서 충목단으로 불렸다. 흥선 대원군에 의해서 훼철되었으며, 훼철된 뒤에는 당시의 오위장 손형수(孫瀅洙)가 이 자리에 자신의 선대 묘역을 조성하였다. 이에 포천 유림들이 분격하여 1873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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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김평묵이 경기도 포천에 있는 유응부의 유허비각 중건을 기념하여 지은 기문. 「충목유공 유허비각 중건기(忠穆兪公遺墟碑閣重建記)」는 1890년(고종 27) 포천 출신의 유학자인 중암(重庵) 김평묵(金平黙)[1819~1891]이 사육신(死六臣)의 한 명으로 분류되는 유응부(兪應孚)[?~1456]의 유허비를 중건한 사실을 기록한 기문(記文)이다. 유허비각의 중건은 유응부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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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2년~1723년 사이 오원이 포천을 지나면서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포천(抱川)」은 1722년(경종 2)부터 1723년(경종 3) 사이에 월곡(月谷) 오원(吳瑗)[1700~1740]이 늦가을 새벽녘에 포천을 지나면서 진퇴격(進退格)[두 개의 서로 비슷한 운부(韻部)를 가지고 한 구씩 건너뛰어 번갈아 운자를 놓는 방식]으로 지은 한시이다. 오원의 자(字)는 백옥(伯玉),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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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무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우신(于新). 충정공(忠貞公) 허종(許琮)의 8세손으로 아버지는 병조참판에 추증된 허도이고, 어머니는 안산 김씨(安山金氏)이다. 부인은 경주 이씨(慶州李氏)이다. 허정(許晶)[1670~1740]은 행충청도수군절도사를 역임하였다. 자곡(紫谷) 윤형동(尹衡東)이 기록한 묘지문(墓誌文)에 보면, 1728년(영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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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군실(君實). 증조할아버지는 홍주문(洪柱文)이고, 할아버지는 홍만기(洪萬紀)이다. 아버지는 예조 판서 홍중후(洪重厚)이고 양아버지는 홍중효(洪重孝)이다. 홍수보(洪秀輔)[1723~1800]는 1756년(영조 32)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58년(영조 34) 승지에 발탁되고, 1762년(영조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