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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665
한자 農淵挽別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성격 문헌|전적
저자 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
권책 1책 51장
규격 28×19.4㎝

[정의]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창협과 아우 김창흡이 쓴 만사(挽詞)와 별장(別章)을 뽑아 모은 책.

[저자]

김창협(金昌協)[1651~1708]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삼주(三洲)이다.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고, 나성두(羅星斗)의 외손이며,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동생이다.

1669년(현종 10) 진사에 합격하고, 1682년(숙종 8) 증광 문과에 전시 장원한 후 병조 좌랑·사헌부 지평·이조 좌랑·함경북도 병마평사·이조 정랑·예조 참의·대사간 등을 지냈다. 기사환국으로 아버지가 진도에서 사사되자 사직하고 영평(永平)에 은거하였다. 1694년 갑술옥사 후 아버지가 신원됨에 따라 이조 참판·대제학·예조 판서·지돈령부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평소에 부드럽고 화기가 가득하였지만, 의리를 변핵함에 있어서는 성조(聲調)를 높여 기절(氣節)이 강개하여 담봉(談鋒)을 범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학문은 이황(李滉)이이(李珥)의 설을 절충하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김창흡(金昌翕)[1653~1722] 역시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자익(子益), 호는 삼연(三淵)이다.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자이자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셋째아들, 이단상(李端相)의 문하이다. 과거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친명(親命)으로 응시하여 1673년(현종 14) 진사시에 합격한 뒤 과장에 발을 끊고 백악(白岳) 기슭에 낙송루(洛誦樓)를 짓고 글을 읽으며 산수를 즐겼다.

1681년(숙종 7) 김석주(金錫胄)의 천거로 장악원 주부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1689년 기사환국 때 아버지가 사사되자 영평(永平)에 은거하였다. 『장자(莊子)』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를 좋아하였고, 친상을 당한 뒤에는 불전(佛典)을 탐독하였다. 1722년 영조가 세제(世弟)로 책봉되어 세제시강원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신임사화로 절도에 유배된 형 김창집이 사사되자 지병이 악화되어 죽었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형태/서지]

1책 51장의 필사본으로, 크기는 28×19.4㎝이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농연만별(農淵挽別)』에는 「인현왕후만(仁顯王后挽)」·「홍판서수은만(洪判書受隱挽)」·「이지평동언만(李持平東彦挽)」·「신정보만(申正甫挽)」·「송정울산필동 (送鄭蔚山必東)」 등 160여 수의 만사와 별장이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 『농암집(農巖集)』『삼연집(三淵集)』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의의와 평가]

『농연만별』이황의 주리설과 이이의 주기설을 절충한 김창집김창흡 형제의 만사와 별장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며, 유학과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형제의 시문을 모은 책으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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