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372 |
---|---|
한자 | 後沙浦里 |
영어공식명칭 | Husapo-ri |
이칭/별칭 | 신포향(薪浦鄕),사포리,외사포리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은숙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후사포리(後沙浦里)는 밀양시 부북면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북동쪽부터 남동쪽까지 전사포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북쪽에는 제대리가 있다. 북서쪽은 마흘리와 접하고, 남쪽은 초동면과 접하고 있다.
[명칭 유래]
후사포리는 전사포리와 함께 신라 때에 향부곡(鄕部曲)이 설치되면서 신포향(薪浦鄕)으로 불렸던 지역이다. ‘후사포리’ 지명은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912]에서 명칭을 확인할 수 있으나,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서는 명칭을 확인할 수 없고, 부북면에 사포리와 외사포리라는 2개 마을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사포리는 신포향에서 변화된 지명으로 전해진다. 섭 신(薪)에서 따와 섶으로 읽혀지고, 이후 삽으로 전음(傳音)되어 ‘삽포’, 또는 ‘삽개’로 변했다고 전한다. 이후 밀양강 가에 위치한 사포리의 지세가 가래 모양이라고 하여 ‘가래 삽자(鈒字)’를 인용하여 이명(里名)으로도 불렸다. 현재는 제방 축조로 인하여 옛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사포리가 전사포리와 후사포리로 나뉜 것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바가 없지만, 밀양강에 접한 지역을 전사포리로 그 뒤편을 후사포리로 구분한 것으로 추정한다.
[형성 및 변천]
1895년 대구부 밀양군 부북면에 속하였으며, 1896년 경상남도 밀양군 부북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그대로 경상남도 밀양군 부북면 후사포리로 개설되었다. 1995년 1월 1일 밀양군과 밀양시 통합에 따라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가 되었다.
후사포리에는 자연 마을로 현포(玄圃), 내곡(內谷), 중포(中浦) 등이 있다. 후사포리에 마을이 형성된 것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 내곡에 밀양박씨가 정착한 이후로 전해진다. 처음 마을이 형성된 내곡은 안골로도 불리는데, 현포와 송악(松岳) 사이의 안쪽에 있어 붙여진 동명이다. 중포(中浦)는 전사포와 후사포의 중간에 있는 붙여진 이름으로 약 400년 전에 평산신씨가 정착하며 형성된 마을이다. 현포(玄圃)는 후포(後浦)라고도 하는데, 옛날 현인(賢人), 선인(仙人)들이 살던 곳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한다.
[자연환경]
후사포리 남서쪽에는 우령산[596.5m]이 솟아 있고, 남쪽과 동쪽 경계부는 우령산에서 이어진 산줄기가 감싸고 있다. 전체 지세는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며 북동쪽 경계부에 이르러 칠성바위들과 같은 평지가 나타난다. 하천은 남서쪽의 산지에서 발원한 소규모 하천만 발달하여 있어, 후사포 소류지와 내곡 소류지와 같은 소규모 저수지가 형성되어 있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154세대, 254명[남자 140명, 여자 11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우령산과 종암산으로 이어지는 산기슭에 자리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며, 타 지역보다 당도가 높은 사포 포도가 주 생산품이다. 외부와 이어지는 주요 도로는 전사포마을을 통해 이어진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인 밀양 예림서원과 밀양 박양춘 여표비각, 점필재 문집 책판 및 이존록 목판이 있으며, 중포에는 신계성(申季誠)의 학행을 숭앙하기 위하여 세워진 비석[1765년 중건]이 있고, 그 외에 경정당(景貞堂), 사우정(四友亭) 등의 정자가 있다. 내곡에는 국담 박수춘의 별묘(別廟)와 국담재(菊潭齋)가 있으며, 곳곳에 고인돌이 산재하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