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1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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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川里黃山旗告祀 |
영어공식명칭 | Sacrificial Rite for the Farming Flag of Geumcheonri Hwangsan villiage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금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민정희 |
시작 시기/일시 | 1950년대 - 금천리 황산 기고사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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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금천리 황산 기고사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금천리 마을회관 앞 공터 |
성격 | 고사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정월 열나흗날 |
신당/신체 | 대나무 장대|농기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금천리 황산에서 음력 정월 열나흗날 농기를 세우고 풍년을 비는 고사.
[개설]
금천리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소재의 마을이다. 예로 금천은 소가 누운 와우형(臥牛形)의 명당으로 유명하다. 소가 누웠다는 뜻으로 우리말로는 ‘소내’ 또는 ‘쇠내’로 불리었다. 일설에는 금(金)이 났다고 하여 금천리라는 지명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금천1리 중심마을은 황산(黃山)이다. 마을의 지세가 학이 누운 형국을 하고 있어서 ‘황학동(黃鶴洞)’으로도 불리었다. 황산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 해질 무렵에 마을 가운데 공터에 세워둔 농기에 정성을 드린다. 주민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기고사를 지내며 농사의 풍년을 빌었다.
[연원 및 변천]
마을주민들에 의하면 1940년대 후반 연기군에서 개최한 농악대회에서 금천2리 마을이 우승하고 부상으로 농기를 받았다. 이때부터 부상으로 받은 농기에 기고사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금천2리의 기고사 영향을 받아 금천1리 황산에서도 1950년대부터 기고사를 지냈으며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농기는 굵은 대나무 장대 끝에 깃발을 매달았다. 마을 인근에서 왕대를 구할 수 없어서 대전 시장에 가서 사 왔다. 현재 마을에서 쓰는 농기는 1959년[단기 4292년]에 장만한 것이다. 기폭 한가운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쓰여 있다. 다른 마을과 달리 묵서(墨書)하지 않고 검은 천으로 해당 글자를 오려서 기폭 한가운데 세로로 붙였다. 지금은 검은 천도 색이 많이 바랜 상태이다. 기폭 좌측에는 ‘단기사이구이년(檀期四二九二年) 원월(元月) 십사일설(十四日設)’이라고 제작 연도가 쓰여 있다. 우측에는 ‘대한민국(大韓民國) 충남(忠南) 연기군(燕岐郡) 금남면(錦南面) 금천리(金川里)’라고 썼다. 제작 연도와 동명은 파란색 글씨이다. 깃발은 직사각형의 긴 천에 윗면에는 일(一) 자 검은 천을 덧대었고 삼면(三面)에는 검정 지네발을 달았다. 맨 위에는 노란색 나무 받침에 꿩털을 묶어서 장식하였고 깃발 아래 나일론 끈으로 기수염을 늘였다. 깃발에 ‘영(令)’이라고 쓴 영기도 2개 있다.
[절차]
해마다 정초가 되면 풍물패가 가가호호 다니면서 기고사 제의비를 갹출하였다. 어느 집이고 들어가면 고사상에 쌀과 돈을 성의껏 내놓았다. 마을사람들은 의논하여 깨끗한 사람으로 유사를 선출하였다. 유사는 며칠 전부터 마을 이장과 상의하여 장을 보아서 제물과 먹매 등을 준비하였다. 마을 대표인 이장과 노인회장 등은 제관을 맡았다. 유사는 기고사에 앞서 바깥출입을 삼가고 근신하였다. 집 앞에 황토를 펴놓거나 금줄을 치지 않았어도 유사 집에도 왕래를 금하였다. 기고사 전에는 부인과 각방을 쓰고 각별히 부정이 타지 않도록 조심하였다. 유사를 비롯하여 제관 일행은 하루 전날 깨끗이 목욕재계(沐浴齋戒)하였다. 농기는 정월 초사흘부터 마을 회관 앞 공터에 세워놓았다. 과거에는 ‘대문 집’이라고 하여 부잣집 바깥마당에 농기를 세웠다. 기를 세우는 날은 특별히 풍물패가 마을을 돌며 흥을 돋우었다. 마당 가운데에 농기를 세워놓고 양 옆으로 영기도 각각 세워 놓았다. 마을에서는 정월 열나흗날 해질 무렵에 기고사를 지낸다. 깃대 앞에 병풍을 치고 상을 펴놓는다. 제물로는 흰시루[백설기]를 올리고, 시루 손잡이 양쪽에 북어 대가리가 하늘을 향하도록 한 마리씩 꽂아 놓는다. 떡시루 가운데에는 불밝이를 놓고 촛불을 밝힌다. 떡시루 옆에는 돼지머리를 올린다. 돼지머리와 함께 대추·밤·감·배·사과 등을 진설하고, 청수도 한 그릇 떠놓는다. 이윽고 해가 지면 풍물패가 신명나게 풍물을 친다. 한참 흥을 돋운 뒤에 제관이 앞으로 나와서 유교식으로 경건하게 고사를 지낸다.
[축문]
유세차 서기 2017년 음력 정월14일 금천 1구 리민 대표 권석봉은 감히 밝게 동네를 보호하시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거느리신 금천리 농기지신께 삼가 고하나이다. 현재 세종자치특별시 금남면 금천리 우복동은 유구한 역사 속에 금강대도의 교리인 충효성경의 얼이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마을로 온 동네의 남녀노소가 상경하애의 정신에 근검절약으로 살아감에 전국적으로 특별하신 농기지신의 보살핌으로 말미암아 년년마다 우순풍조하시고 시화년풍은 물론이요 마을에 사는 주민들과 객지로 나가 사는 애향민들까지 두루 돌봐 주시어 아무런 재앙이 없었음을 깊이 감사드리오며 오늘을 기점으로 하여 금년 한 해에도 더욱더 살펴 주시옵기를 복원드리면서 삼가 청작서수로써 공순히 전드림을 피노니 굽어 하감하옵소서
[현황]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금천1리 기고사는 1950년대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