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21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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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京畿北部地域敵對勢力-被害事件-抱川-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금주리, 일동면 수입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동원 |
[정의]
6·25전쟁 당시 포천군민을 포함한 경기 북부 지역 주민들이 적대 세력에 의해 희생된 사건.
[개설]
1950년 7월 22일부터 1950년 10월 5일까지 경기도 가평군, 포천군, 양주군, 파주군, 고양군 등 경기 북부 지역에서 진실규명대상자 19명과 조사과정에서 인지된 희생자 3명 등 총 22명이 적대세력에 의해 희생당하거나 강제연행되었음을 참고인 진술과 문헌자료를 통해 확인 또는 추정하여 진실을 규명한 사례이다.
[경과]
포천 지역에서 6·25전쟁 당시 적대 세력에 의해 피해를 당하고 진실 구명을 신청한 사건은 2건이다. 포천군 영중면 금주리 강제연행사건은 “1950년 8월 어느 날, 박옥진이 의용군으로 끌려가 포천군 신북면 신평리에 있는 신북국민학교에 집합되었고, 이후 행방불명되었으며, 시신은 수습되지 못한 사건”이다.
그리고 포천군 일동면 수입리 희생사건은 “1950년 9월 13일경, 박제필이 지방 좌익에 의해 포천내무서로 끌려가 감금되었고, 1950년 9월 27일, 트럭에 태워져 포천군 구읍 뒷산(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 청성문화체육공원)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총살당한 사건”으로 시신은 수습되었다.
본 사건에 대하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의 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진실규명대상자 박옥진(朴玉辰, 남, 19, 이명 박대성)은 포천군 영중면 금주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1950년 8월 어느 날, 박옥진은 그의 형 박대일이 군인이라는 이유로 지방 좌익과 인민군에 의해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당시 포천군에서 의용군에 차출된 사람들은 신북면 신평리에 있는 신북국민학교에 집합되었는데, 박옥진 역시 신북국민학교로 끌려갔고 이후 행방불명되었다.
진실규명대상자 박제필(朴濟弼, 남, 49)은 포천군 일동면 수입리에 거주하며 일동면사무소에 근무하고 있었다. 박제필은 1950년 7월 15일 무렵, 자택에서 내무서원에 의해 끌려가 일동분주소에 3일간 감금되어 있다가 이후 분주소에 갇혀 있던 사람들과 함께 트럭에 태워져 포천내무서로 옮겨져 그곳에 약 1주일 간 갇혀 있다가 자택으로 돌아왔다. 박제필은 1950년 9월 13일 경, 논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무서원에 의해 끌려가 포천내무서에 감금되었다. 박제필은 1950년 9월 27일(음력 8월 16일), 포천내무서에 갇혀 있던 사람들과 함께 트럭에 태워져 포천군 구읍 뒷산(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 청성역사공원)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두 손이 줄로 묶인 채 총살당하였다. 박제필이 희생당하고 약 한 달이 지난 후, 박제필의 부인과 친척들은 구읍 뒷산에 시신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으로 가 박제필이 입었던 옷과 금니를 보고 그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결과]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에서는 문헌 자료와 신청인 및 참고인 진술을 통해 1950년 7월 22일부터 1950년 10월 5일 사이에 경기도 포천군 등에서 적대 세력에 의한 피해 사건이 발생하였고, 그로 인해 상기 진실규명대상자 2명은 희생당하거나 강제 연행되었음을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