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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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望亭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병찬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17년 - 「평망정」 저자 양사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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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584년 - 「평망정」 저자 양사언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626년 - 「평망정」을 수록한 『봉래시집』 간행 |
배경 지역 | 양사언 선생 묘 -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 산193 |
배경 지역 | 길명사[사당] -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 산175-1 |
성격 | 한시 |
작가 | 양사언 |
[정의]
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양사언이 자신의 고향 집인 평망정을 소재로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개설]
「평망정(平望亭)」은 포천 출신의 문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평망정을 보고 자신의 고향 집을 찾아온 감회를 노래한 한시이다.
양사언의 자(字)는 응빙(應聘), 호(號)는 봉래, 해객(海客), 완구(完邱), 창해(滄海) 등이다. 본관은 청주(淸州)로 남사고(南師古)의 문인이다. 1540년(중종 35) 진사시 급제, 1546년(명종 1)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이후에 함흥 판관, 평창 군수, 강릉 부사, 회양 부사 등 주로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평망정」은 『봉래시집(蓬萊詩集)』 권(卷) 1에 수록되어 있다. 조경(趙絅)[1586~1669]이 지은 묘갈명(墓碣銘)에 “봉래 양선생의 아들이 선생의 시를 간행하여 세상에 행해진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조경이 이조좌랑으로 있던 1630년(인조 8)에 쓴 글이므로 결국 『봉래시집』의 간행 시기는 1626년~1630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즉 양사언의 아들 양만고(楊萬古)[1574~1654]가 유고를 수집 편차하여 1626년 무렵에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봉래시집』은 3권 1책으로 되어 있다.
[내용]
여운신세경하거(如雲身世竟何居)[구름 같은 내 신세는 끝내 어찌 될까.]
봉전평부십재여(蓬轉萍浮十載餘)[날리는 쑥대, 떠도는 부평처럼 10여 년을 보냈네.]
래제송추상로하(來祭松楸霜露下)[서리와 이슬 내린 묘소에 제를 올리러 왔다가]
독귀호해반금서(獨歸湖海伴琴書)[쓸쓸히 강호로 돌아가 거문고 서책과 짝하네.]
[특징]
「평망정」이라는 제목의 다음에 ‘옛 시를 차운하다. 평망정은 포천에 있는 가택이다[次古詩, 平望亭卽抱川家舍也]’라는 구절을 병기한 것으로 미루어 양사언이 포천의 집을 평망정이라 명명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양사언은 사후에 영평현 금오산[현재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 산193번지]에 묻혔다.
[의의와 평가]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은 『성호사설(星湖僿說)』「시문문(詩文門)」에서 “사람들은 그의 글씨가 진속(塵俗)을 벗어난 줄만 알고, 그의 시가 세상 사람의 말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 못한다.”라고 하고 양사언의 「제발연반석상(題鉢淵磐石上)」을 들어 칭송하였다. 이 시에 대해서는 허균(許筠)[1569~1618]도 “선표발속(仙標拔俗)”이라는 평을 한 바 있다. 또한 「증최고죽(贈崔孤竹)」이라는 시는 널리 인구에 회자되었다고 하며, 「장항령(獐項嶺)」이라는 시는 「동문선(東文選)」에 수록되어 있다. 양사언의 한시에는 회양 부사 시절에 자주 유람하였다는 금강산의 명승을 소재로 한 것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