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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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柱精舍記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근호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673년 - 「천주정사기」 저자 현상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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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731년 - 「천주정사기」 저자 현상벽 사망 |
배경 지역 | 천주산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기지리 |
성격 | 기문 |
작가 | 현상벽 |
[정의]
조선 후기 현상벽이 포천의 천주산 아래에 세워진 천주정사에 대해서 쓴 기문.
[개설]
「천주정사기(天柱精舍記)」는 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관봉(冠峯) 현상벽(玄尙璧)[1673~1731]이 유광기(兪廣基)[1674~1757]의 부탁을 받아 경기도 포천의 천주산 아래에 세운 천주정사에 대하여 쓴 기문(記文)이다. 천주정사는 기계 유씨 유광기가 부모의 묘소를 천주산에 마련한 뒤 세운 것이다. 「천주정사기」는 현상벽의 문집인 『관봉유고(冠峯遺稿)』 권(卷) 10에 수록되어 있다.
[구성]
「천주정사기」는 천주정사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를 시작으로, 이어 현상벽이 기문을 작성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였다. 이어 효(孝)에 대해서 서술하였는데, 이는 천주정사의 설치를 효의 연장선상에서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내용]
기계 유씨 유광기가 부모의 묘소를 천주산에 마련한 뒤 묘소 옆에 재실을 마련하였으나 이곳은 항상 거처하기가 불편하였다. 이에 천주산 아래 평탄한 곳에 작은 집을 지어 천주정사라 한 것이다. 처음 천주정사를 만들었을 때 여유가 없어 기문을 짓지 못했다. 마침 유광기가 오산(烏山) 지역의 수령으로 가서는 그곳에 살고 있던 현상벽을 불러 천주정사를 가리켜 사후에 돌아갈 진택(眞宅)으로 삼았다고 하면서, 살아서는 이곳에서 슬픔을 노래하고 죽어서는 이곳에 매장되려고 하니 자신을 위해 기문을 지어 주기를 청했던 것이다. 유광기의 부탁을 받은 현상벽은 「천주정사기」에서 천주정사가 만들어지는 계기와 자신이 기문을 쓰게 된 계기를 설명하면서, 동시에 유광기의 효심을 높이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