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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응부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1917
한자 兪應孚傳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흥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454년 - 「유응부전」 저자 남효온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492년 - 「유응부전」 저자 남효온 사망
배경 지역 충목단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 27
성격
작가 남효온

[정의]

조선 전기 남효온이 포천 출신의 사육신 유응부에 대하여 기록한 전.

[개설]

「유응부전(兪應孚傳)」은 조선 전기의 문인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1454~1492]이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에서 출생한 사육신 유응부(兪應孚)[?~1456]에 관하여 기록한 전(傳)이다.

「유응부전」남효온의 문집인 『추강집(秋江集)』 권(卷) 8의 속록(續錄) 전(傳) 가운데 「사육신전」에 실려 있다. 「사육신전」에는 유응부를 비롯해 박팽년(朴彭年)[1417~1456], 성삼문(成三問)[1418~1456], 이개(李塏)[1417~1456], 하위지(河緯地)[1412~1456], 유성원(柳誠源)[?~1456] 등의 인물들이 수록되었다.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 27번지에 위치한 충목단(忠穆壇)에는 유응부의 유허비(遺墟碑)와 신위(神位)가 있다. 충목단은 1987년 2월 12일 경기도 기념물 제102호로 지정되어 있다.

[내용]

「유응부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인(武人)이다. 씩씩하고 용감하며 활을 잘 쏘았다. 세종문종이 모두 사랑하고 중하게 여겨서 지위가 2품에 이르렀다. 병자년(1456, 세조 2)에 일이 발각되어 대궐 뜰로 잡혀 왔다. 임금이 묻기를 “그대는 무엇을 하려 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사신을 청하여 연회하던 날에 일척(一尺)의 검(劍)으로 족하를 폐하고 옛 임금을 복위하려 했으나, 불행히도 간사한 사람에게 고발당했으니 응부(應孚)가 다시 무엇을 하겠습니까. 족하는 속히 나를 죽이시오.” 하였다.

…… 유응부는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서 무릇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지 않는 바가 없었다. 아우 유응신(兪應信)과 함께 모두 활을 쏘아 사냥하는 것으로 세상에 이름이 났는데 짐승을 만나 활을 쏘면 맞추지 못함이 없었다. 집안이 가난하여 한 항아리의 곡식도 쌓인 것이 없었으나 어머니를 봉양하는 일에는 일찍이 넉넉하지 않음이 없었다. 어머니가 일찍이 포천(抱川)의 전장(田莊)으로 갔을 때에 형제가 모시고 가다가 말 위에서 몸을 날려 하늘을 향해 활을 쏘니, 기러기가 활시위 소리가 나자마자 떨어지므로 어머니가 크게 기뻐하였다…….

[武人也 雄勇善射 英廟文廟皆愛重之 位至二品 丙子事發 拿至闕庭 上問曰 汝欲何爲 對曰 當請宴日 欲以一尺劍廢足下復故主 不幸爲奸人所發 應孚復何爲哉 足下速殺我 …… 應孚性至孝 凡可以慰母心者 無所不爲 與弟應信 俱以射獵名世 遇禽發無不中 家貧無甔石之儲 而養母之具 未嘗不贍 母嘗往抱川田莊 兄弟從行 於馬上翻身仰射 雁應弦而墮 母大喜 ……].”

[의의와 평가]

「유응부전」은 당시 상황에서는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한 사육신의 행적을 사찬(私撰)함으로써 정사(正史)에서 배척되어 자칫 잊힐지 모르는 유응부의 행적을 남효온이 기술한, 역사의식과 문학성이 결합된 작품이다.

[참고문헌]
  • 『국역 추강집』 (한국 고전 번역원, 2007)
  • 한국 고전 번역원 한국 고전 종합 DB(http://db.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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