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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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基炳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금동2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계형 |
출생 시기/일시 | 1885년 - 김기병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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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944년 04월 14일 - 김기병 정려 건립 |
출생지 | 김기병 출생지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금동 2리 |
정려 | 김기병 정려문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금동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안산(安山) |
[정의]
개항기 포천 출신의 효자.
[가계]
대호군 안성위 이한은 조선 초 좌명공신으로 연성군(蓮城君)에 봉해진 위정공(威靖公) 김정경의 다섯째 아들로 호평공의 시호를 받았는데, 김기병(金基炳)은 그의 15세손이다. 아들은 김태진(金泰鎭)이다.
[활동 사항]
김기병은 포천군 신북면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천성이 온후하고 효심이 지극하여 부모님과 웃어른을 지성으로 섬기며 봉양하였다고 한다. 17세 때 어머니가 중병에 걸리자 정성을 다하여 약을 해 드렸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이때 어느 의원으로부터 노루의 생간이 좋다는 말을 듣고 며칠 동안 산을 헤매다가 어렵게 노루를 잡아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어느 겨울철에는 어머니가 산과일을 먹고 싶다고 하자 엄동설한에 이곳저곳 찾아다니다가 눈 쌓인 바위 밑에 있는 머루 두어 송이를 찾아내 따다가 봉양하였다고 한다. 그 뒤 외출 중에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귀가하여 자신의 무명지를 이빨로 깨물어 피를 내어 먹여 다시 소생하게 하였고, 돌아가실 때까지 봉양에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고 한다. 아들 김태진도 효행이 뛰어났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김기병의 효행이 널리 알려져 포천군 추천으로 나라에서 주는 후한 상을 받았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1910년에 두 번째로 특상을 받았다. 사망 후 김기병을 기리는 찬양문이 많이 쓰였고 각 교화 단체로부터 포상도 받았다. 1944년 4월 14일 당시 대성 학원에서 김기병의 효행을 기려 정문을 지었지만, 지금은 없어졌고 정려만 서 있다. 정문 현판에는 ‘천 효자 대성 학원 교수 안산 김기병지문(薦孝子大成學院敎授安山金基炳之門)’이란 글씨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안에는 ‘자모 병환 시탕시 단지 회생지사 설중 구헌 산도 산장 자래 부복지사(慈母病患侍湯時 斷指回甦之事雪中求獻山桃 山獐自來俯伏之事)’라는 포창 서문과 포창 시가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