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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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恒一 |
이칭/별칭 | 여중(汝中)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가산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성환 |
활동 시기/일시 | 1677년 - 조항일 숭릉 참봉 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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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02년 - 조항일 첨지중추부사 제수 |
출생지 | 조항일 출생지 -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가산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한양 |
[정의]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효자.
[활동 사항]
조항일(趙恒一)은 자는 여중(汝中)으로, 포천현의 남쪽 20리 떨어진 화산(花山)[현 포천시 가산면 가산리]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용주(龍洲) 조경(趙絅)에게 학문을 배웠다. 성장해서는 홀로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아버지가 병으로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혈서를 써서 천지신명께 빌며 자신의 수명을 줄여서라도 아버지의 수명을 연장케 해 달라고 기원하였다. 치성이 끝난 다음 꿈속에 노인이 나타나 “네 효성이 지극하기로 아버지의 명을 연장해 주노라.”고 하였다 한다. 2년 후에 아버지의 병이 재발해서 세 차례나 손가락을 끊어 피를 넘기게 하고 여덟 차례나 하늘에 기원하여 다시 6년의 수명을 연장시켰다.
스승 조경의 상을 당해서도 3년간 심상(心喪)으로 추모하였다.
조정에서 정려를 내렸으나 아들로서 할 일을 하였을 뿐 상을 받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사양한 후, 양주 선영 아래로 이사하였다. 1677년(숙종 3) 효행으로 숭릉 참봉을 제수하였고, 80세가 넘었으므로 1702년(숙종 28)에 수직(壽職)으로 첨지중추부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