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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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震喆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가팔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변은숙 |
거주|이주지 | 이진철 거주지 - 경기도 포천시 소흘면 이가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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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예안(禮安) |
[정의]
조선 시대 포천 출신의 효자.
[가계]
사인(士人) 이작(李焯)의 서자이고, 판결사(判決事) 이수(李琇)의 5세손이다.
[활동 사항]
이진철(李震喆)은 견성현 갈와리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지극한 정성으로 어버이를 섬겼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부유한 집에서 품을 팔아 부모를 섬겼지만 늘 부족하여 겨우 빈천함을 면할 정도였다. 후에 면천(免賤)이 되었어도 옛 주인을 섬기는 데 예의를 다하였다. 면천된 뒤에는 땔나무를 갖다 팔아서 생활비를 벌었다. 그 중 절반은 옛 주인에게 보냈으며 나머지 반으로 어버이를 공양하였다.
어머니가 이질에 걸려 고생하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반드시 손수 달여 올렸으며, 밤이면 목욕재계하고 자신이 어머니의 병을 대신해서라도 쾌차하기를 빌었다. 이러한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나 장례를 지낼 형편이 못되어 조문 온 사람들이 돈과 곡식을 부조해 줘서 장사를 모셨으며, 한 치도 예의에 어긋남이 없었다. 어머니 상중에는 육류와 술을 멀리하고 죽과 채소로만 연명하면서 매일 묘소를 찾아 곡을 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의리를 지켜 옛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였으며, “부친이 돌아가시고 나 또한 늙어서, 비록 어버이를 섬기는 마음으로 옛 주인에게 정성을 다하고자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가겠는가.”라고 한탄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진철의 효성과 주인에 대한 충성을 칭찬하였다. 65세에 죽자 유림에서 그 행실을 기려 포상해 줄 것을 조정에 청하였으나 은전을 받지는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