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0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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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秉駿 |
이칭/별칭 | 경범(景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성환 |
출생 시기/일시 | 1814년 - 조병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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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41년 - 조병준 생원시 합격 |
몰년 시기/일시 | 1858년 - 조병준 사망 |
출생지 | 조병준 출생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재동 |
묘소|단소 | 조병준 묘소 -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 |
선정비 | 조병준 선정비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풍양(豊壤) |
대표 관직 | 병조 판서 |
[정의]
경기도 포천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가계]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경범(景範). 아버지는 조원영(趙原永)이고 외할아버지는 한용구(韓用龜)이다. 풍은 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의 종질이다.
[활동 사항]
조병준(趙秉駿)[1814~1858]은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재동에서 출생하였다. 1841년(헌종 7)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면서 부(賦) 수위를 차지하여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특전을 입었다. 또 김세균(金世均)·이유원(李裕元)과 함께 인정전(仁政殿)에서 열린 한림소시(翰林召試)에 합격하였다.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46년(헌종 12) 종척집사(宗戚執事) 행호군을 거쳐 1848년(헌종 14) 규장각 직제학·개성 유수를 거쳐 이조참판을 지냈다. 1849년(헌종 15) 홍문관 부제학, 1850년(철종 1) 한성부 판윤을 거쳐 형조판서, 다음 해 수원부 유수를 지냈으며, 병조판서에 올랐다. 수원부 유수로 있을 때 그곳 사당 영정(影幀)들이 오래되었음을 보고, 강릉본(江陵本)의 공자 상(孔子像)을 본떠 안치하도록 하였다.
1852년(철종 3) 함경도 관찰사로 나아갔다가 1854년(철종 5) 다시 한성부 판윤이 되었고, 이듬해 공조판서·대사헌·행대호군·우참찬 등을 지냈다. 1856년(철종 7) 세 번째로 한성부 판윤을 역임하고, 이듬해 판의금부사·상호군을 거쳐 경상도 관찰사로 나아갔다.
[묘소]
묘는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葛末邑)에 함경도 관찰사 당시 세워졌던 선정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