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1025 |
---|---|
한자 | 尹以濟 |
이칭/별칭 | 여즙(汝楫)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용정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우석 |
출생 시기/일시 | 1628년 - 윤이제 출생 |
---|---|
몰년 시기/일시 | 1701년 6월 11일 - 윤이제 사망 |
출생지 | 윤이제 출생지 -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용정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파평(坡平) |
대표 관직 | 형조 판서 |
[정의]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여즙(汝楫). 증조할아버지는 공조판서를 지낸 윤국형(尹國馨)[1543~1611]이고, 할아버지는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윤경립(尹敬立)[1561~1611]이다. 아버지는 증 이조판서 윤세징(尹世徵)이며, 어머니는 유정(柳艇)의 딸인 문화 유씨(文化柳氏)이다. 첫째 부인은 유영(柳潁)[1603~1646]의 딸인 진주 유씨(晉州柳氏)이고, 둘째 부인은 풍해군(豊海君) 이잠(李潛)[1585~1648]의 딸인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첫째 부인에게서 윤집경(尹集慶)을 두었고, 둘째 부인에게서 윤지경(尹趾慶)과 윤기경(尹基慶)을 두었다.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1625~1707]과는 동서지간이다.
[활동 사항]
윤이제(尹以濟)[1628~1701]는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용정리에서 출생하였다. 호주(湖洲) 채유후(蔡裕後)[1599~1660]와 동주(東州) 이민구(李敏求)[1589~1670]에게서 배웠다. 1654년(효종 5)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663년(현종 4)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666년(현종 7) 강서 현령을 지냈고, 1669년(현종 10) 평양 서윤을 거쳐 1673년(현종 14) 예조 정랑에 임명되었다. 1674년(현종 15) 성균 사예로 옮겼다가 그해 충주 목사에 임명되었다. 1675년(숙종 1) 의주 부윤이 되고, 1677년(숙종 3) 병조 참의가 되었다. 1678년(숙종 4) 승지에 임명되었고, 그해 강화 유수가 되어 해안 방어를 위한 강화 돈대를 축조하였다. 1680년(숙종 6) 호조 참판이 되었다가 공청도 관찰사로 나갔다. 그해 서인이 정권을 잡은 경신대출척이 일어나자 남인에 속하였던 윤이제는 근신하며 관찰사직을 수행하였으나 1681년(숙종 7) 대간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682년(숙종 8) 서원 현령에 임명되었다가 그해 진하 겸 진주 사은 부사(進賀兼陳奏謝恩副使)가 되어 영창군(瀛昌君) 이침(李沈), 한태동(韓泰東)[1646~1787]과 함께 청나라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1683년(숙종 9) 한성부 우윤에 임명되었고, 이후 장단 부사·안동 부사·평안도 병마절도사·형조참판 등의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686년(숙종 12)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다가 한성부 좌윤이 되었고, 1687년(숙종 13) 평안도 관찰사에 임명되었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이 일어나자 남인으로 어영대장에 임명되었고, 다시 예조 참판 겸 비국당상 동지의금부사를 지냈다. 다시 한성부 우윤과 좌윤을 거쳐 한성부 판윤을 거쳐 형조판서가 되었다. 1690년(숙종 16) 지중추부사로 비변사를 겸하여 관장하였고, 1691년(숙종 17) 원접사(遠接使)가 되어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였다. 그해 총융사를 거쳐 1692년(숙종 18) 다시 어영대장에 임명되었다. 그해 우참찬·공조판서·형조판서를 거쳐 1693년(숙종 19) 또다시 어영대장에 임명되었다.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가 일어나자 문외출송(門外出送)되었다가 바로 사면을 받고 향리인 포천으로 내려가 은거하였다. 1699년(숙종 25) 부호군에 임명되었다가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전후 네 번 형조판서를 지내고 두 번 한성부 판윤을 지냈으며 여러 번 어영대장을 역임하였으나 청렴결백하고 몸가짐을 삼가, 남인으로서 숙종 대 환국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큰 화를 당하지 않았다.
[묘소]
『송파집(松坡集)』에 실린 「윤이제 신도비명(尹以濟神道碑銘)」에는 포천현의 서쪽 호곡(壺谷)에 장사 지냈다가 뒤에 다른 곳으로 이장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