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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983
한자 金礩
이칭/별칭 가안(可安),쌍곡(雙谷),문정(文靖)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신채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22년연표보기 - 김질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50년 - 김질 문과 급제 후집현전 수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455년 - 김질 성균 사예 제수
활동 시기/일시 1456년 - 김질 장인 정창손과 함께 사육신의 단종 복위 도모 고변
활동 시기/일시 1459년 - 김질 병조참판 제수, 상락군에 봉해짐
활동 시기/일시 1461년 - 김질 평안도 관찰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468년 - 김질 우의정 제수
활동 시기/일시 1469년 - 김질 상락 부원군에 봉해짐
활동 시기/일시 1471년 - 김질 좌리공신 2등에 봉해짐
활동 시기/일시 1474년 - 김질 우의정 제수, 주문사로 명나라 다녀옴
몰년 시기/일시 1478년연표보기 - 김질 사망
묘소|단소 김질 묘소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안동(安東)
대표 관직 우의정

[정의]

경기도 포천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증조할아버지는 김사형(金士衡)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김종숙(金宗淑)이다. 부인은 정창손(鄭昌孫)의 딸 동래 정씨(東萊鄭氏)이다. 동생 김작(金碏)은 성종의 후궁 명빈 김씨(明嬪金氏)의 아버지이다.

[활동 사항]

 김질(金礩)[1422~1478]은 처음 충의위(忠義衛)에 보직되어 부사직을 역임하였다. 1450년(세종 32)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수찬이 되었다. 성삼문(成三問), 신숙주(申叔舟), 최항(崔沆) 등과 함께 문종의 총애를 받았다. 문종이 승하하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위로는 삼정승이 주로 보필하였고 아래로는 집현전 학사들이 보필하였다. 김질은 당시 집현전 학사였다.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왕위를 찬탈하자 집현전 학사들이 단종 복위 운동을 꾀하였는데, 이때 김질은 그 일원으로 성삼문 등과 모의하였으나 거사 직전 장인인 정창손과 함께 수양 대군에게 이를 밀고하였다.

이 고변으로 세조로부터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를 제수 받고 좌익공신(左翼功臣) 3등이 되었다가 후에 상락군(上洛君)에 봉해졌다. 그 후 평안도 관찰사, 공조 판서, 병조 판서, 의정부 우참찬, 경상도 관찰사를 역임하고 1468년(세조 14) 우의정에 이어 좌의정에 올랐다. 1469년(예종 1)에는 상락 부원군(上洛府院君)에 진봉되었고,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2등에 봉해졌다. 1474년(성종 5) 우의정으로서 주문사가 되어 명나라를 다녀왔다.

[학문과 저술]

세조 연간부터 시작되었던 『경국대전』 편찬 작업에 참여하였다.

[묘소]

묘는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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