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9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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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權 |
이칭/별칭 | 이중(而中)/졸탄(拙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조준호 |
[정의]
조선 후기 포천 지역에서 활동했던 문신.
[가계]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이중(而中), 호는 졸탄(拙灘). 증조할아버지는 생원 김숙필(金叔弼)이고, 할아버지는 홍문관 대사성 김식(金湜)이다. 아버지는 현릉 참봉 김덕무(金德懋)이며, 어머니는 윤인(尹麟)의 딸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다.
[활동 사항]
김권(金權)[1549~1622]은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580년(선조 13)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가 되었다. 1581년(선조 14) 예문관 검열, 1582년 성균관 전적·사헌부 감찰·병조좌랑·사간원 정언·홍문관 수찬, 1583년(선조 16) 예조좌랑·호조좌랑·병조좌랑을 역임하였다. 1585년(선조 18) 사간원 헌납으로 재임 중 이이(李珥)를 비난하는 정여립(鄭汝立)을 논박하다 파직 당하였다.
1590년(선조 23) 지평으로 복직하였으나 이듬해 정철(鄭澈) 등이 축출당할 때 다시 파면 당하였다. 1592년(선조 25) 여름 왜구가 침입하여 갑작스레 서도(西道)로 파천(播遷)하는 일이 이루어지자, 김권은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포천의 산골짝을 거쳐 사잇길을 따라 행재소에 나아갔다. 임진왜란 때 문학·교리·지평·사간 등을 역임하고, 난이 끝난 뒤 사인·수찬·직강·연안 부사·사복시 첨정 등을 거쳐 호조참판이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전주로 광해군을 호종한 공으로 1612년(광해군 4) 청풍군(淸風君)에 봉해졌다. 1615년(광해군 7)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정치가 문란해지자 사직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폐모론에 반대하다 강계로 유배되었고, 이후 무안으로 이배되어 5년 뒤 그곳에서 죽었다.
[상훈과 추모]
인조대 영의정에 추증되고, 청풍의 봉강 서원(鳳岡書院)과 무안의 송림 서원(松林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