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8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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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萬歲橋戰鬪址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 2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진호 |
소재지 | 만세교 전투지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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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전투지 |
[정의]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에 있는 1950년 국군 제9연대가 북한군의 도하를 저지하였던 곳.
[개설]
국군 제9연대 2대대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4시간 동안 홀로 싸우고 있었고, 전방의 분산 병력을 수습하면서 북만세의 급편 방어 진지를 고수하고 있었다. 제9연대 주력은 2대대를 지원하기 위해 6월 25일 아침 일찍 주둔지를 출발하여 북상하였다. 이때까지 연대에서 경계 부대인 제2대대에 대한 지원은 대전차포 3문과 로켓포 12문에 불과하였다.
오전 8시를 전후해 북한군은 전차를 앞세우고 국도 43호선을 따라 공격을 재개하였다. 이때 208고지 북쪽에 배치된 제5중대 2소대 진지에서 기관총 사격 등 중대의 모든 가용한 화력으로 전 전차에 공격을 가하였으나 파괴시키지 못하였다. 이때 연대에서 급파된 대전차포 중대가 만세교에 도착하였다.
3문의 대전차포를 인솔해 온 대전차포 중대장은 만세교 남쪽 20m 도로변에 대전차포를 방열하였다. 대전차포 중대장은 북한군 전차가 50m 전방까지 오기를 기다렸다가 첫 탄을 발사하여 명중시켰다. 그러나 전차는 파괴되지 않고 오히려 대전차포 진지에 대해 전차포 사격을 가하며 계속 공격해 왔다. 이에 병사들은 할 수 없이 포의 조준경을 빼 들고 벌말 쪽으로 급히 철수하기에 이르렀다. 북한군 전차가 만세교를 지나 포천 방향으로 진출하자 신대리 부근에 잠복해 있던 특공대가 탱크를 공격하여 적의 진출을 지연시키기로 하였다.
[위치]
만세교 전투지(萬歲橋戰鬪址)는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 21번지에 위치한다. 만세교는 국도 43호선 포천시 신북면과 영중면의 경계를 이루는 명덕천에 있는 다리로, 만세교 남쪽 신북면에는 만세교에서 유래한 ‘만세교리’라는 마을도 있다.
[현황]
만세교는 전쟁 이후 몇 차례 보수 공사와 신축을 거듭하여 당시 모습이 남아 있지 않다. 현재의 신만세교는 전쟁 당시에 있던 만세교 자리에 복원한 것이다. 만세교라는 다리 이름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포천 문화원이 발간한 『포천 지명 유래집』을 보면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함흥을 오가면서 이 다리를 지났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또 일제 강점기 3·1 운동 당시 만세를 부른 곳이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도 있으나 그 전부터 만세교라는 이름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아 나중에 갖다 붙인 것으로 보인다. 영조 대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영평현의 남쪽 10리, 포천현의 북쪽 20리 북관 대로에 만세교가 있다”는 내용이 있다.
[의의와 평가]
만세교 전투지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에 맞서 저지시킨 국가 수호 사적지이다. 국도 43호선을 따라서 전차를 앞세우고 남침하는 북한군에 맞서 화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전투를 벌여 남쪽으로의 진출을 지연시킨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