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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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土亭遺稿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성환 |
편찬 시기/일시 | 1672년 - 『토정 유고』 편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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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 시기/일시 | 1720년 - 『토정 유고』 간행 |
소장처 |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
성격 | 문헌|전적 |
저자 | 이지함(李之菡) |
편자 | 이선(李選)[고열]|이정익(李禎翊)[산윤] |
간행자 | 이정익 |
권책 | 2권 1책 |
규격 | 23.1×17.9㎝ |
[정의]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포천 현감을 지낸 이지함의 시문 유고집.
[저자]
이지함(李之菡)[1517~1578]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 포천 현감을 지냈다. 본관은 한산, 자는 형백(馨伯)·형중(馨仲), 호는 수산(水山)·토정(土亭), 아버지는 현령 이치(李穉)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맏형인 이지번(李之蕃) 밑에서 글을 배우다가 뒤에 서경덕(徐敬德)의 문하에 들어갔다. 이지함이 수리(數理)·의학·복서(卜筮)·천문·지리·음양·술서(術書) 등에 달통하게 된 것은 그 영향이다. 1573년(선조 6)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포천 현감이 되었고, 1578년(선조 11) 아산 현감이 되어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어 정착지가 없는 걸인들을 구제하였다. 마포 강변의 흙담 움막집에서 지내며, ‘토정’이라 하였다. 전국의 산천을 두루 다니며 가난을 구제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편찬/간행 경위]
이지함이 평소 저술을 좋아하지 않아 가장(家藏)되어 있는 원고가 미미하였는데, 이선(李選)이 1672년(현종 13) 홍문관 응교로 여러 유집(遺集)을 고열(考閱)하면서 이지함의 유고 한 질을 묶어 『토정 유고(土亭遺稿)』라 하고 교서관에 소장해 두었다. 이를 현손인 이정익(李禎翊)이 열람하고, 가장된 옛 기록들을 참고하여 산윤(刪潤)을 가하여 현손 이정억(李禎億)·외현손 조세환(趙世煥)과 함께 간행을 도모하였다. 이에 송시열에게 발문(跋文)을 받고 또 서문(序文)을 청하였는데, 기사환국[1689년]으로 서문은 받지 못하였다. 1712년(숙종 38) 권상하(權尙夏)에게 발문을 받고, 1720년(숙종 46)에 이정익이 경주부윤으로 나갔을 때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2권 1책의 목판본으로, 크기는 23.1×17.9㎝이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원집 2권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卷首)에는 정호(鄭澔)의 서문이 실려 있다. 권 상(上)에는 이지함의 시문을 모아 놓았는데, 오언 배율의 「차송운장운(次宋雲長韻)」1, 「차도정절귀거래사(次陶靖節歸去來辭)」1, 「대인설(大人說)」·「피지음설(避知音說)」·「과욕설(寡欲說)」·「이포천시상소(莅抱川時上疏)」·「이아산시진폐상소(莅牙山時陳弊上疏)」가 실려 있다. 이 중 「대인설」에서는 대인만이 진정한 영강부귀(靈强富貴)를 누릴 수 있음을 말하였고, 「피지음설」에서는 현사(賢士)는 산수와 전야(田野) 사이에서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과욕설」은 맹자의 과욕설을 나름대로 해석한 글로, 을사사화 이후의 정치 상황에서 관계에 진출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각처로 떠돌며 강학(講學)하였던 이지함의 행적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두 편의 상소는 포천 현감과 아산 현감 시절에 올린 것으로, 포천의 피폐한 재정 상황을 구제할 방책을 제시하고, 아산의 군정에 대한 폐단의 시정을 요구한 것이다. 권 하(下)에는 이이(李珥)의 『석담 일기(石潭日記)』, 이정형(李廷馨)의 『동각 잡기(東閣雜記)』 등에서 이지함의 행적을 채록한 유사(遺事)가 실려 있고, 부록으로 고경명(高敬命)·조헌(趙憲)이 지은 시와 사액 제문(賜額祭文), 묘갈명(墓碣銘), 증작(贈爵)과 증시(贈諡)를 청하는 계장(啓狀), 시장(諡狀)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실용의 측면에서 민생을 위한 여러 고민과 방책을 제시했던 이지함의 학문과 사상을 담은 자료이다. 특히 본업(本業)과 말업(末業)의 효과적인 운영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개선시키려는 실천가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