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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696
한자 芝川集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632년연표보기 - 『지천집』 간행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소장처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50
성격 문헌|전적
저자 황정욱(黃廷彧)
편자 황혁(黃赫)
간행자 이후원(李厚源)
권책 4권 3책
규격 19.8×16㎝

[정의]

1632년 간행된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인 황정욱의 시문집.

[저자]

황정욱(黃廷彧)[1532~1607]은 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본관은 장수, 자는 경문(景文), 호는 지천(芝川)이다. 영의정 황희(黃喜)의 후손으로, 부호군(副護軍) 황열(黃悅)의 아들이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편찬/간행 경위]

『지천집(芝川集)』황정욱의 아들 황혁이 수집·편차하였다. 황혁이 1612년(광해군 4) 무고로 투옥되어 옥사할 때 가장(家藏) 문적이 모두 금중(禁中)[궁궐]으로 압수되었는데, 『지천집』도 거기에 들어 있었다. 그 후 금중에서 한 사람이 이를 발견하고 황정욱의 사위인 이욱(李郁)에게 알렸으며, 이욱은 황정욱의 유고를 사서 가장해 두었다. 이후 황정욱의 관작이 회복되자 외손인 이후원(李厚源)이 1632년(인조 10) 단양 군수로 나갔을 때 황정욱의 유고에 장유(張維)에게 부탁하여 지은 서문(序文)과 황혁이 지은 행장 등을 첨부하여 『지천집』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원집 4권 3책, 부록 2권의 목판본으로, 크기는 19.8×16㎝이다. 현재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과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1~2에는 오언 절구·칠언 절구·오언 율시·칠언 율시·칠언 배율 194수가 시체별로 실려 있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길주로 유배되었을 때 지은 시 중에서 「길주팔영(吉州八詠)」은 유배지에서 충심을 읊었고, 「증박첨지사호(贈朴僉知士豪)」는 길주에서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의 제자를 만난 감회를 표현하였다. 권3은 교서·서계(書契)·서(書)·차자(箚子)·소(疏)·전(箋)인데, 「의여일본관백서(擬與日本關伯書)」와 「격일본국관백서(檄日本國關伯書)」는 임진란 이후 정유재란을 획책하던 일본 관백을 의리로써 힐책한 글이다. 권4는 서(序)·기(記)·명(銘)·발(跋)·애사(哀詞)·제문·묘갈명·묘지명이다. 부록에는 아들 황혁이 지은 행장, 윤근수(尹根壽)의 「수서(壽序)」, 저자를 위한 제문·만시(輓詩), 신원과 관련한 상소와 논의가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장서각본에는 권미(卷尾) 배지(背紙)에 1655년(효종 6) 이후원(李厚源)이 쓴 “을미년[1655년] 3월에 이후원이 실록을 고출(考出)하는 일로 내려오는 길에 삼가 외대부(外大父)가 지으신 『지천집』 한 질을 사각(史閣)에 보관토록 하여 실추(失墜)됨을 막고자 한다”는 글이 있는데, 문집이 사각에 보관된 예로, 당쟁의 와중에서 이 자료가 지닌 중요성을 의미하고 있다.

또 “당대의 명가시를 일컬을 때면 반드시 호음(湖陰) 정사룡(鄭士龍),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 지천 황정욱을 꼽는데 지천의 유고로 남아 있는 시가 200수도 되지 않는다”는 장유의 안타까움과 “일대 사림(士林)의 종장(宗匠)”이라는 평에서도 황정욱의 문장에 대한 높은 평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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