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6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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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淵傳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성환 |
[정의]
1604년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인 이항복이 지은 류연의 전기.
[저자]
이항복(李恒福)[1556~1618]은 조선 중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본관은 경주, 자는 자상(子常), 호는 필운(弼雲)·백사(白沙)이다. 참찬 이몽량(李夢亮)의 아들이고, 권율(權慄)의 사위이다.
1580년(선조 13)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89년 예조 정랑으로 역모 사건의 친국에 참여하여 선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고,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을 처리한 공로로 평난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비를 개성까지 호위하고, 왕자를 평양으로,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였다. 또 이덕형과 명나라에 원병을 청할 것을 건의하였고, 남도 지방에 사신을 보내 근왕병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병조판서·이조판서, 홍문관과 예문관 대제학을 겸하여 안으로는 국사에 힘쓰고 밖으로는 명나라 사절의 접대를 전담하였다.
1602년 정인홍(鄭仁弘) 사건에서 성혼을 비호하고 나섰다가 정철의 편당으로 몰려 영의정에서 사퇴하였고, 광해군 때 광해군의 친형인 임해군(臨海君)의 살해 음모에 반대하다가 정인홍 일당의 공격을 받았다. 1617년 인목 대비 김씨가 서궁에 유폐되고 이어 왕비에서 폐위하여 평민으로 만들자는 주장이 나오자 이에 맞서 싸우다가, 1618년 관작이 삭탈되고 북청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편찬/간행 경위]
1604년 이항복이 지은 류연의 전기를 1674년 성주목(星州牧)에서 중간한 자료이다. 이 내용은 이항복의 문집인 『백사집』 권16 「류연전습유(柳淵傳拾遺)」에도 실려 있다.
[형태/서지]
1책 11장의 목판본으로, 크기는 30.9×19.9㎝이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류연전(柳淵傳)』의 내용은 1564년(명종 19) 사간원의 첩보에 대한 내용에서 시작된다. “대구에 사는 류유(柳游)가 가출하였는데, 매부인 종실 달성령(達成令) 이제(李褆)가 그를 찾아 학생인 아우 류연에게 돌려보냈다. 그러나 류연은 맏이 자리를 빼앗아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형을 죽였다. 그런데 대구 부사 박응천(朴應川)이 강상죄인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지체시키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류연은 사형에 처해졌으나 16년 후 무고임을 드러난 것이다.
이 자료에는 류연(柳淵)의 가계와 무고로 죽게 된 전말이 기록되어 있다. 즉 1589년(선조 22)에 류연의 부인 이씨가 옥안(獄案)을 번복(飜覆)하여 남편의 억울함을 밝힌 전말을 기록하였다. 성주목에서 원옥(寃獄)을 경계하기 위해 그 사실을 기록하여 류연전(柳淵傳)이라 이름하였다.
[의의와 평가]
『류연전』은 16세기 제사 승계에 대한 관념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