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6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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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谷集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성환 |
[정의]
1699년 간행된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수항의 문집.
[저자]
김수항(金壽恒)[1629~1689]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구지(久之), 호는 문곡(文谷)이다.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의 손자이고, 동지중추부사 김광찬(金光燦)의 아들이다.
1646년(인조 24) 진사시에, 1651년(효종 2) 알성 문과에 장원하였고, 병조 좌랑·경기도사 등을 거쳐 1753년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55년 수찬을 거쳐 응교·사간·보덕을 지냈으며, 문과 중시에서 급제한 후 형조참의·승지·부제학을 지냈다.1662년 예조판서에 발탁된 후 육조의 판서를 두루 거쳤다. 특히 이조판서로 있으면서 명사들을 조정에 선임하는 데 힘썼다. 1672년 이후 우의정·좌의정을 지냈다.
서인 송시열 등이 왕의 경원을 받고 물러나자 남인인 재상 허적(許積)을 탄핵한 대간을 변호하다가 판중추부사로 물러났고, 사은사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74년 갑인예송에서 서인이 패하여 영의정이던 형 김수흥(金壽興)이 쫓겨나자 대신 좌의정으로 다시 임명되었고, 숙종 즉위 후 허적·윤휴(尹鑴)를 배척하고 종실 복창군(福昌君) 이정(李楨)·복선군(福善君) 이남(李柟) 형제의 추문을 들어 처벌을 주장하다가 집권파인 남인의 미움을 받아 영암에 유배되고 1678년(숙종 4)에 철원으로 이배되었다.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영중추부사로 복귀하여 영의정이 되었고, 1689년 기사환국으로 다시 진도로 유배, 위리안치되었다가 사사되었다. 1694년 신원, 복관되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편찬/간행 경위]
김수항의 아들 김창집(金昌集)과 김창협(金昌協)의 주도로 유고를 산삭하여 시는 1030수, 문(文)은 477편으로 정리하였고, 김창집이 강화 유수로 나가면서 비용을 마련하여 1699년 8월에 인역(印役)을 시작해서 12월 28권 13책으로 완료하였다.
[형태/서지]
28권 13책의 활자본[운각인서체자]으로, 크기는 21.2×13.9㎝이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문곡집(文谷集)』 본집은 28권 1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7은 시로, 1030수가 실려 있는데, 곳곳에 저자의 자주(自註)와 편자의 주석이 자세히 실려 있다. 권8~권15는 소차(疏箚)로, 1653년(인조 4)에 올린 「사정언소(辭正言疏)」부터 1688년(숙종 14)에 올린 「도교외진정소(到郊外陳情疏)」까지 190여 편이 저작 연대순으로 실려 있다. 권16은 계(啓)로, 대사간과 대사헌 등을 역임할 때 올린 계사와 함경북도의 시관(試官)으로 나갔을 때 올린 서계(書啓) 등이다.
권17은 의(議) 55편으로, 1672년(현종 13)에 우의정이 된 뒤 좌의정과 영의정을 역임하면서 올린 수의(收議)이다. 권18~권20에는 신도비명·묘갈명·묘지(墓誌)·묘표(墓表)가 실려 있고, 권23~권24는 제문·애사(哀辭)이며, 권25는 반교문(頒敎文)·책문(冊文)·교명문(敎命文)·전지(傳旨)·표전(表箋)·상량문(上樑文)이다. 권26은 서(序)·기(記)·제발(題跋)·잡저(雜著)이다. 권27~권28은 서독(書牘)으로, 송시열(宋時烈)·홍위(洪葳)·민정중(閔鼎重)·이단하(李端夏)·박세채(朴世采) 등에게 보낸 것이다.
[의의와 평가]
『문곡집』은 서인계 관료의 정치와 사회경제 사상을 볼 수 있고‚ 조선 후기 안동 김씨 가문의 문학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