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6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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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凌壺集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성환 |
간행 시기/일시 | 1779년 - 『능호집』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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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국립 중앙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 |
성격 | 전적|문집 |
저자 | 이인상(李麟祥) |
편자 | 이영장(李英章)|윤면동(尹冕東) |
간행자 | 김종수(金鍾秀) |
권책 | 4권 2책 |
규격 | 22.4×14.7㎝ |
[정의]
1779년 간행된 포천 출신의 문인이자 화가인 이인상의 문집.
[저자]
이인상(李麟祥)[1710~1760]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인이자 화가이다. 본관은 전주, 자는 원령(元靈), 호는 능호관(凌壺觀)·보산자(寶山子)이다. 이경여(李敬輿)의 현손이다.
1735년(영조 11) 진사에 급제하였으나 증조할아버지 이민계(李敏啓)가 서자였기 때문에 본과에 이르지 못하고, 음보(蔭補)로 북부 참봉이 되었다. 이후 음죽 현감, 사근역 찰방을 지냈으나, 몸이 쇠약하여 고생하였다.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으로 탐관오리의 부정을 참지 못하고, 관찰사와 다툰 뒤 관직을 버리고 단양에 은거하여 벗들과 시·서·화를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
학통은 김창흡(金昌翕)과 이재(李縡)로 이어지는 이기절충론(理氣折衷論)을 이어받고, 이윤영(李胤永)·송문흠(宋文欽)·황경원(黃景源)·오재순(吳載純)·윤심형(尹心衡)·김무택(金茂澤) 등과 가까이 지냈다. 글씨 중 해서체는 안진경(顔眞卿)을 따랐으나, 전서체는 마음 내키는 대로 호기 있게 써서 당시에도 기(奇)하다고 하고 혹은 허(虛)하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추사 김정희(金正喜)는 그 문자향을 높이 평가하면서 “전각은 200년 이래로 따를 자가 없다”고 하였다. 유품으로 『원령첩(元靈帖)』[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과 『능호첩(凌壺帖)』이 전한다.
[편찬/간행 경위]
1779년 평안 감사로 있던 김종수(金鍾秀)가 『능호고(凌壺稿)』를 산정하여 간행을 권하는 윤면동(尹冕東)의 청을 받아들여 이인상의 아들 이영장(李英章)이 가지고 온 유초(遺草)를 활자로 인출하였다. 일본 백산 문고(白山文庫)에는 14권 7책의 『능호집(凌壺集)』 사본이 소장되어 있는데, 전고본(全稿本)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본래 14권 분량의 유고를 윤면동이 4권으로 산정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형태/서지]
4권 2책의 활자본[운각인서체자(芸閣印書體字)]으로, 크기는 22.4×14.7㎝이다. 국립 중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능호집(凌壺集)』은 서문(序文)은 없고 권수(卷首)에 각 권별의 총목(總目)이 있고, 말미에는 1779년 김종수(金鍾秀)가 지은 발문이 있다. 권1~2에는 시 411수가 시대순으로 실려 있는데, 김창흡(金昌翕)·이기상(李麒祥)·장진희(張震熙)·신소(申韶)·이민보(李敏輔)·송문흠(宋文欽)·김순택(金純澤)·이윤영(李胤永) 등과 차운한 시와 1737년 금강산을 유람하고 지은 시 등이 있다. 권3에는 서(書) 18편, 서(序) 8편, 기(記) 8편이 있는데, 「답천동서(答泉洞書)」는 명나라의 멸망을 한탄하고 있는 편지이고, 연경으로 가는 이유수(李惟秀)와 황경원(黃景源)을 보내는 송서(送序), 다백운루(多白雲樓)에 대해 지은 기 등이 있다. 권4에는 발(跋) 4편, 지(識) 4편, 애사(哀辭) 4편, 제문 14편, 잡저(雜著) 13편이 있다. 특히 잡저에는 1740년에 지은 「월부(月賦)」를 비롯하여 다양한 문체가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능호집』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문인 화가의 문집으로, 진경산수화인 「옥류동(玉流洞)」·「은선대(隱仙臺)」 등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 데 기초 자료이며, 당대의 이윤영(李胤永), 후대의 윤제홍(尹濟弘), 그리고 정수영(鄭遂永)·이재관(李在寬)·김수철(金秀哲)·김창수(金昌秀) 등 문인 화가의 계보를 이해하는 데도 참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