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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영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662
한자 魯史零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673년연표보기 - 『노사영언』 간행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성격 문헌|전적
저자 이항복(李恒福)
편자 이세구(李世龜)
간행자 이시현(李時顯)
권책 30권 15책
규격 33.8×21.6㎝

[정의]

1673년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인 이항복이 노나라의 역사를 분류한 책.

[개설]

이항복이 『춘추(春秋)』의 경문(經文)과 『좌전(左傳)』을 깊이 연구하여 전문(傳文)의 번란한 것을 빼고 외전(外傳)에서 보완하여 엮고, 『노사(魯史)』중의 영쇄(零瑣)한 말이라고 하여 『노사영언(魯史零言)』이라 한 책이다.

[저자]

이항복(李恒福)[1556~1618]은 조선 중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본관은 경주, 자는 자상(子常), 호는 필운(弼雲)·백사(白沙)이다. 참찬 이몽량(李夢亮)의 아들이고, 권율(權慄)의 사위이다.

1580년(선조 13)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89년 예조 정랑으로 역모 사건의 친국에 참여하여 선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고,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을 처리한 공로로 평난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비를 개성까지호위하고, 왕자를 평양으로,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였다. 또 이덕형과 명나라에 원병을 청할 것을 건의하였고, 남도 지방에 사신을 보내 근왕병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병조판서·이조판서, 홍문관과 예문관 대제학을 겸하여 안으로는 국사에 힘쓰고 밖으로는 명나라 사절의 접대를 전담하였다.

1602년 정인홍(鄭仁弘) 사건에서 성혼을 비호하고 나섰다가 정철의 편당으로 몰려 영의정에서 사퇴하였고, 광해군광해군의 친형인 임해군(臨海君)의 살해 음모에 반대하다가 정인홍 일당의 공격을 받았다. 1617년 인목 대비 김씨가 서궁에 유폐되고 이어 왕비에서 폐위하여 평민으로 만들자는 주장이 나오자 이에 맞서 싸우다가, 1618년 관작이 삭탈되고 북청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편찬/간행 경위]

『노사영언(魯史零言)』이항복이 북청 배소(配所)에서 죽은 후 필사본으로 몇 편이 전해지다가 손자인 이시현(李時顯)이 성산 목사가 되었을 때에 아들인 이세구(李世龜)에게 명하여 1673(현종 14) 교정하고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30권 15책의 목판본으로, 크기는 33.8×21.6㎝이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노사영언』은 책머리에 1673년(현종 14) 박세채(朴世采)가 쓴 서문과 범례 11항목이 실려 있다. 제1책은 권1~3으로 외전(外傳)이라 하여 『국어』에 실려 있는 기사를 끌어다 『좌전』에 없는 것을 보충한 은공(隱公)·환공(桓公)·장공(莊公)의 기사, 제2책은 권4~5로 민공(閔公)·희공(僖公)의 기사, 제3책은 권6~7로 희공의 기사, 제4책은 권8~9로 문공(文公)의 기사, 제5책은 권10~11로 선공(宣公)의 기사가 실려 있다.

제6책은 권12~13으로 성공(成公)의 기사, 제7책은 권14~15제, 8책은 권16~17, 제9책은 권18~19은 양공(襄公)의 기사, 제10책 권20~21과 제11책 권22~23, 제12책 권24~25는 소공(昭公)의 기사, 제13책은 권26~28로 소공·정공(定公)의 기사, 제14책 권29와 제15책 권30은 애공(哀公)의 기사로 되어 있다. 기술은 편년체로 『좌전』중에서 번문(繁文) 및 점설(占說) 등을 빼고 필요한 것은 외전에서 보완하였다.

[의의와 평가]

『노사영언』은 『좌전』에서 많이 간추리고 외전에서 보편(補篇)을 덧붙인 데 특징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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