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6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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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上錄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근호 |
저술 시기/일시 | 1881년 이후 - 『해상록』 저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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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논설 |
저자 | 김평묵 |
[정의]
1881년 이후 포천 출신의 유학자 김평묵이 위정척사적인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논설.
[개설]
『해상록(海上錄)』은 조선 후기 포천에서 출생하고 세거하였던 김평묵(金平黙)[1819~1891]이 서양 세력이나 주화(主和) 등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위정척사적인 입장을 정리한 글이다. 김평묵의 문집인 『중암 문집(重庵文集)』 권34에 수록되었다.
[저자]
김평묵의 본관은 청풍이고, 자는 치장(穉章), 호는 중암(重庵)이다. 포천의 화산면 시우촌에서 출생했고, 스무 살 때에는 당시 포천 현감인 성근수(成近壽)의 권유로 포천 현학(縣學)에서 수학하였다. 20대에는 양근에서 이항로(李恒老)와 홍직필(洪直弼) 등에게 수학하였다. 이후 포천과 춘천, 가평 등지를 오가면서 생활하였고, 1876년(고종 13) 이후에는 외국과의 화약(和約)에 반대하는 척사론의 입장에서 상소를 제출하였고, 이로 인해 1881년(고종 18)에는 전라도 지도(智島)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스승인 이항로의 학문과 사상을 이어받아 실천한 화서학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편찬/간행 경위]
「해상록」이라는 제목을 통해서 대략 저술 시기가 추정된다. 즉 김평묵이 외국과의 조약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1881년(고종 18) 전라도 지도로 유배가 생활하던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구성/내용]
서술은 ‘천하의 모든 일은 오로지 옳고 그름만 있다’는 전제로 글을 시작하였다. 이어서 ‘양호지서(洋胡之書)’로 표현되는 서양 서적에 대한 비판을 비롯해 서양 세력이나 일본과의 교류나 앞선 시기 최명길(崔鳴吉)과 윤증(尹拯)의 주화론에 대한 비판과 같이 주로 척사론적인 입장에서 서술되었다. 이밖에도 불교에 대한 비판이나 정개청(鄭介淸)의 저술인 「동한절의진송청담설(東漢節義晉宋淸談說)」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