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6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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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鵩舍雜錄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근호 |
저술 시기/일시 | 1883년 - 『북사잡록』 저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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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지 | 지도(智島) -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읍 |
성격 | 문헌|전적 |
저자 | 김평묵 |
[정의]
1883년 포천 출신의 문인인 김평묵이 정리한 문답서.
[개설]
조선 후기 포천에서 출생하고 세거하였던 김평묵이 자신을 찾아온 유긍수(柳肯秀)·이병익(李秉翼) 등과 정전(井田) 등 여러 문제를 문답한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그의 문집인 『중암 문집』 권34에 수록되었다.
[저자]
김평묵(金平黙)[1819~1891]의 본관은 청풍이고, 자는 치장(穉章), 호는 중암(重菴)이다. 포천의 화산면 시우촌에서 출생했고, 20대에는 양근에서 이항로(李恒老)와 홍직필(洪直弼) 등에게 수학하였다. 이후 포천과 춘천·가평 등지를 오가면서 생활하였다. 1876년(고종 13) 이후에는 외국과의 조약에 반대하는 척사론의 입장에서 상소를 제출하였고, 이로 인해 1881년(고종 18)에는 전라도 지도(智島)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스승인 이항로의 학문과 사상을 이어받아 실천한 화서학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편찬/간행 경위]
『복사잡록(鵩舍雜錄)』은 1883년(고종 20)에 저술된 것으로, 당시 저자인 김평묵은 지도(智島)에서 유배중이었다. 유배중이던 김평묵을 유긍수·이병익 등이 찾아갔고, 이들 이외에도 이태용(李泰容)·정낙용(鄭洛鎔) 등과 함께 문답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구성/내용]
『북사잡록』은 먼저 저술 경위를 밝히고 이어서 문답 내용을 정리하였다. 문답 내용 중에는 정전(井田)이나 송나라 때 왕안석이 실시한 신법(新法)을 비롯해 이적(夷狄)의 문제, 상재(上宰)의 문제, 개가한 부녀의 자손 문제 등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중 정전이나 신법에 대해서 김평묵은 정전이나 신법이 좋은 법이기는 하지만 제도가 잘 시행되지 못한 것은 제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적합한 인재가 배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한 오랑캐의 풍속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면서 오랑캐의 의복이나 언어 등은 모두 중화 문명에 어긋난 것이라고 하였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