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6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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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抱川懿法靑年會 |
이칭/별칭 | 포천엡윗청년회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신대광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 있었던 개신교 청년 단체.
[개설]
의법 청년회는 엡윗 청년회(Epworth League)를 한자식으로 표한 것이다. 엡윗 청년회는 1889년 미국에서 창설된 감리교의 청년 단체이며, ‘엡윗’은 요한 웨슬리의 고향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1897년 5월 5일 서울 정동 교회에서 창립된 엡윗 청년회를 기점으로 하고 있으며 이후 전국 각지에 엡윗 청년회가 세워졌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도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판단된다.
[설립 목적]
포천 의법 청년회는 일제 강점기 당시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바로 보기 위한 강연회 활동과 함께 민족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21년 5월 27일 포천 구읍리 예배당에서 부회장 오상근(吳相根)의 사회로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연사는 윤치호(尹致昊)였으며, 강연 제목은 ‘시대의 변천’이었다. 1921년 7월 31일 포천 영평 예배당에서 의법 청년회 주최로 강연회를 개최하여 문학부장 김택모의 사회로 이화춘 목사의 기도가 있었다. 연사 오상근은 ‘견문을 분명히 하라’라는 제목으로, 김재선(金在璇)은 ‘인생의 3대 의문’이라는 제목으로 열변을 토해 참석한 200여 명의 청중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한편 8월에는 여름철을 이용하여 문화 선전의 목적으로 지역을 순회하며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송우리 시장에서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회장 김재선의 사회로 진행했으며 강연 내용은 오상근의 ‘심령과 탐욕’, 최태옥(崔泰玉)의 ‘금일 조선 사회의 급무’, 김재선(金在璇)의 ‘현대의 사조와 우리 청년’이었다. 1923년 12월 청년회는 잡지 종람소를 두고 당시 발행되는 신문과 잡지를 구해 남녀 회원들에게 회람을 시켰다. 그리고 산업부를 두고 자작자급의 정신을 실행하도록 하였다.
[의의와 평가]
포천 의법 청년회는 당시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