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000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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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第九聯隊防禦戰鬪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양영조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50년 06월 25일 - 제9연대 방어 전투 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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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950년 06월 25일 - 제9연대 방어 전투 종결 |
발생|시작 장소 |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리 |
발생|시작 장소 |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사직리 |
종결 장소 |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리 |
종결 장소 |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사직리 |
[정의]
1950년 6월 25일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발생한 방어 전투.
[경과]
1950년 6월 25일 포천 북방의 38°선 일대의 방어를 전담하고 있던 국군 제9연대 제2대대는 추동리·사직리 일대에서 북한군 제3사단 예하 부대의 남침을 받았다. 제2대대는 제6중대와 제7중대를 전방 경계 지대에 배치하였으나, 적의 공격을 받고 예비대를 투입하였다.
북한군은 6월 25일 오전 3시 40분을 전후하여 공격 준비 사격을 시작하였다. 북한군은 국군의 전방 경계 진지를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군의 방어 진지를 집중적으로 포격하였다. 국군은 기관총 진지를 제외한 모든 교통호가 붕괴되면서 사상자가 속출하였다.
국군의 방어 체계를 화력으로 무너뜨린 북한군 제3사단은 공격 준비 사격을 계속하면서 전방 2개 중대의 방어 전면으로 전차를 앞세우고 공격하였다. 양중교를 통과한 적 전차 3대가 양문교 부근까지 진출하여 방어 진지를 유린하였다. 제7중대는 국도 43호선을 적에게 빼앗기고 823고지 서쪽 능선으로 후퇴하여 분산 병력을 수습하였다.
추동리와 사직리에서도 한 차례 교전을 전개하였는데, 북한군은 아군 방어 진지 후방의 5㎞ 지역까지 포격을 집중하면서 공격을 가해왔다. 아군의 방어 진지는 적의 포격으로 순식간에 무너졌다. 장자동으로 집결한 제6중대는 삼차로부터 287고지까지 이어지는 곳에 급편 방어 진지를 편성하였으나, 적의 전차 공격을 재차 받고 분산 철수하고 말았다.
[결과]
국군 제9연대는 북한군 제3사단을 맞아 포천 지역에서 방어 전투를 전개하였으나, 숫적 열세 등으로 인해 대부분의 병력을 잃고 후퇴하였고, 제1대대의 잔여 병력만이 태릉에 집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