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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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圓通寺 |
영어공식명칭 | Wontong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원통사로 676[죽천리 1-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경석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698년 - 원통사 법당과 종각 중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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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중창 시기/일시 | 1949년 - 원통사 여순 사건의 병화로 전 당우 소실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957년 - 원통사 인법당과 산신각 건립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3년 8월 24일 - 원통사지 전라북도 기념물 제67호로 지정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985년 - 원통사 대웅전 중창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996년 - 원통사 명부전 중창 |
현 소재지 | 원통사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원통사로 676[죽천리 1-1] |
성격 | 사찰 |
전화 | 063-323-2101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 소속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원통사(圓通寺)의 창건과 관련하여 1698년(숙종 24)에 세워진 원통사 중창비(圓通寺重創碑)에는 신라 시대에 창건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창건 이후 고려 시대까지 원통사의 역사를 전해 주는 사료는 없다. 다만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금산군 불우조에 덕유산 원통사의 존재가 확인될 뿐이다. 이후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가람고(伽藍考)』, 『범우고(梵宇攷)』 등에도 사명(寺名)이 등장하지만, 사찰의 위치와 이름만을 알려 주는 정도이다.
원통사는 조선 후기에 와서 일대 중흥기를 맞게 되는데, 1698년(숙종 24)에 승려인 탄언·도영·혜왕·일확이 법당과 종각을 중창하였다고 사적비에 전하고 있다. 이전의 원통사 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때의 중창 불사로 어느 정도 사격(寺格)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된 이후, 의병장 김동신(金東臣)·문태서(文泰瑞)·신명선(申明善) 등의 의병 부대가 원통사를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고, 1949년 여순 사건의 병화(兵禍)로 전 당우가 소실되었다. 이후 6·25 전쟁 당시 주지이던 황범인(黃梵仁)이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 명천 마을에 임시로 법당을 마련하고 불법을 전하다 1957년에 가람 중창에 착수하여 인법당과 산신각을 건립하였다. 근래에 들어와서는 승려 배정공(裵正空)이 옛터에 서울 삼보 법회 회장으로 있던 승려 황범인의 둘째 아들 황경석(黃慶石)의 시주로 초연교(超然橋), 선초당(善超堂) 등을 지었고 1985년에 대웅전, 1996년에 명부전을 새로 중창하였다.
[활동 사항]
정기 예배로 매월 말 천배 묵언 기도를 하며 자비 도량 참법 기도를 수행한다. 신도는 약 300여 명 정도이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법당, 선방, 산신각, 요사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련 문화재]
대웅전 영산회상도, 원통사 칠성 탱화, 「원통사 산신각 독성 탱화(圓通寺山神閣獨聖幀畵)」, 「원통사 원통보전 신중 탱화(圓通寺圓通寶殿神衆幀畵)」, 원통사 중창비, 원통사 남봉당 탑(圓通寺南峰堂塔), 원통사 사당 선혜 탑(圓通寺舍堂善惠塔)이 있다. 원통사지(圓通寺址)는 1983년 8월 24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67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