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4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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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圓通寺重創碑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원통사로 676[죽천리 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범호 |
건립 시기/일시 | 1698년 4월 - 원통사 중창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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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원통사 중창비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원통사로 676[죽천리 1] |
성격 | 기념비 |
양식 | 석비 |
관련 인물 | 탄언(坦彦)|일학(一學)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43㎝[높이]|73㎝[너비]|15㎝[두께]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원통사 중창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개설]
원통사 중창비(圓通寺重創碑) 비문에 의하면, 신라 창건 당시의 규모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법당 외에 종각·누각 등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탄언(坦彦)·도영(道英)·혜옥(惠玉)·일학(一學) 등에 의해 당(堂)과 종각을 중창하고 불상을 중수하였으며, 동종(銅鐘)을 주조하는 등의 대불사(大佛事)를 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원통사는 의병 부대가 항일 투쟁의 근거지로 삼았으며, 1949년 여순 사건 당시 병화로 소실된 것을 1985년 대웅전·선초당(善超堂)·초연교(超然橋) 등을 완성함으로써 원통사의 옛 모습을 찾게 되었다.
[건립 경위]
원통사 중창비는 1698년(숙종 24) 승려 탄언과 일학이 원통사의 법당과 종각을 중창하는 불사를 마치고 이를 기념하여 세운 비이다.
[위치]
무주군 안성면 명천 사거리에서 원통사로(圓通寺路) 명천리 원통사 방면으로 우회전한 후 1.2㎞ 가다가 원통사교를 지나 좌회전하여 3㎞ 이동하면 원통사에 도착한다. 비는 원통사 대웅전 앞 누각 터 옆에 있다.
[형태]
원통사 중창비는 근래 새롭게 조성한 비좌 위에 세웠는데, 높이 143㎝, 너비 73㎝, 두께 15㎝ 규모의 화강암 재질이다. 바닥에 깔려 있는 자연석을 기단석으로 삼고 그 위에다 대리석 비신을 세웠는데, 동심원의 문양이 새겨진 반원형 이수(螭首)가 얹혀 있다. 이수는 머리 끝 부분에 유두형 보주(寶珠)가 조각되었고, 양쪽 날개에는 마치 거북 머리 모양의 귀가 달려 있다.
[금석문]
앞면에는 ‘덕유산 원통사 법당 여 종각 중창급 불상 중수 주종 겸숙 석기(德裕山圓通寺法堂與鐘閣重創及佛像重修鑄鍾兼熟石記)’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강희 삼칠 년 황호 맹하일 입비 통정 이승업(康熙三十七年黃虎孟夏日立碑通政李承業)’이라는 글이 있다. 강희 37년은 1698년이고 맹하(孟夏)는 초여름 또는 음력 4월을 이르는 말이다.
[현황]
현재 비문은 마멸이 심해 판독이 어려운 상태이다. 원통사지(圓通寺址)는 1983년 8월 24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67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원통사에 대한 유일한 기록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