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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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蓮寺址 |
영어공식명칭 | Temple Site Baekryeonsa |
이칭/별칭 | 삼공리 백련사지,삼공리 백련사 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백련사길 580[삼공리 936-1]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조명일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9년 12월 27일 - 백련사지 전라북도 기념물 제62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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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백련사지 전라북도 기념물 재지정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7년 - 백련사지 원광 대학교 마한·백제 문화 연구소에서 지표 조사 실시 |
소재지 | 백련사지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백련사길 580[삼공리 936-1] |
성격 | 절터 |
지정 면적 | 12,694㎡ |
소유자 | 대한 불교 조계종 백련사 |
관리자 | 전라북도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기념물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절터.
[변천]
백련사(白蓮寺)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통일 신라 시대 신문왕(神文王)[681~692] 때 백련 선사가 은둔하던 곳에 하얀 연꽃이 솟아 나와 절을 짓고 ‘백련사’라고 하였다는 설과, 830년(흥덕왕 5)에 무량 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설이 구전으로 전한다. 백련사지(白蓮寺址)가 있는 구천동 계곡은 예로부터 고승 대덕(高僧大德)들이 도을 닦고 선풍을 일으킨 성지로, 벽송당 지안 대사에게서 법통을 이어받은 부용당 영관 선사, 선문의 거봉이었던 부휴당 선수 대사, 부휴당의 법제자 벽암당 각성 대사, 서산 대사의 4대 제자 중 한 사람인 정관당 일선 대사와 일선 대사의 법제자 임성당 충언 선사 등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1672년(현종 13)에 윤증(尹拯)이 덕유산(德裕山)을 등정하고 남긴 『유려 산행기(遊廬山行記)』와 1764년(영조 40)에 전주 종남산 송광사 간행본인 『서역 중화 해동 불조 원류(西域中華海東佛祖原流)』, 1765년(영조 41)에 발간된 『무주부 읍지(茂朱府邑誌)』, 1898년(고종 35)에 무주 향교(茂朱鄕校)에서 간행된 『적성지(赤城誌)』 등에 따르면, 구천동 계곡에는 구천동사(九千洞寺), 백련사(白蓮寺), 백련암(白蓮庵)으로 불리는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백련사는 1900년(고종 37)에 중수되었으나, 1910년(순종 4)에 국권 피탈을 당하면서 세력이 기울기 시작하였고, 일제 강점기에 덕유산 일대가 홋카이도[北海島] 제국 대학의 소유림이 되면서 사찰이 심하게 변형되었다. 또한 6·25 전쟁을 겪으면서 모두 화재로 소실되어 그 흔적만 남게 되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 절터에 초가로 법당 1동을 건립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선수 대사가 옛 가람을 재현하였다. 1967년에는 무주군 무주읍에 있는 무주부 관아(茂朱府官衙) 내동헌의 건물을 옮겨 요사로 사용하였고, 백련암으로 불리던 절의 이름도 백련사로 고쳤다.
[위치]
무주 구천동 계곡에 있는 백련사 탐방로 매표소에서 등산로를 따라 2시간가량 오르면 백련사 일주문에 닿을 수 있다. 등산로의 정비가 잘되어 있어 오르는 길이 평이한 편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현 백련사 건물은 1960년대 후반에 지어진 것이며, 옛 백련사의 터는 2007년에 『문화 유적 분포 지도-무주군』 제작의 일환으로 원광 대학교 마한 백제 문화 연구소가 실시한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현황]
현재 백련사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원통전, 명부전, 보제루, 천왕문, 일주문, 범종각 등을 갖춘 사찰로서 대한 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로 등록되어 있다. 사찰의 내부에는 백련사 계단(白蓮寺戒壇)[전라북도 기념물 제42호], 매월당 부도(梅月堂浮屠)[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43호], 백련사 정관당 부도(白蓮寺靜觀堂浮屠)[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02호] 등이 남아 있다. 현 백련사의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창건 당시 가람의 흔적은 찾기 어렵지만, 절 내부 곳곳에서 통일 신라 시대 기와편 등이 확인된다. 면적은 1만 2694㎡이다.
[의의와 평가]
백련사지는 선풍이 깃든 무주 구천동 계곡의 대표적인 사찰로서 불교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다만 구전을 통해 통일 신라 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졌을 뿐, 이를 확증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없는 실정이다. 현재 사찰 건물들이 들어서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발굴 조사를 통해 사찰의 창건 시기 및 변천 과정을 밝히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979년 12월 27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6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