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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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용평리에 전해오는 조선 전기 김교의 교서. 이시애(李施愛)[?~1467]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운 김교(金嶠)[1428~1480]에게 세조가 1467년 11월에 내린 교서(敎書)이다. 김교의 자는 고경(高卿), 호는 양양(良襄)이다. 본관은 선산(善山)이다. 1450년 무과에 합격하여 훈련원 판관, 부호군(副護軍), 사복시윤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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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에 위치한 하륜의 부조묘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시대 고문서. 하륜 부조묘에 소장된 고문서 중 「회맹록(會盟錄)」과 「입안록(立案錄)」은 총 2책 38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1. 「회맹록」은 크기가 108.5×81㎝이며, 상하 2단으로 구성된 목판본 문서이다. 문서에는 본래 제목이 없지만 다른 자료들을 참조한 결과 「(삼공신) 회맹록」...
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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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에 거주한 유학자 정동학의 문집. 정동학[1688~1721]의 자는 명숙(鳴叔)이고 호는 각헌(覺軒)이다. 본관은 팔계(八溪)이다. 할아버지는 정우익(鄭友益), 아버지는 정세망(鄭世望)이다. 어머니는 탐진안씨(耽津安氏)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대평리에서 태어났고,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거주하였다. 1708년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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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촌 출신인 노광두의 문집. 노광두(盧光斗)[1772~1859]의 자는 청지(淸之), 호는 감모재(感慕齋)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촌 출신이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으로 추증된 노석규(盧錫奎), 어머니는 밀양박씨 박내오(朴來吾)[1713~1785]의 딸이다. 신성진(愼性眞)의 문인으로 1814년(순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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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감수재 박여량의 시문집. 2권 1책 고활자본(古活字本)[후기목활자(後期木活字)]의 이본(異本)이 있다. 박여량(朴汝樑)[1554~1611]의 자는 공간(公幹), 호는 감수재(感樹齋)이다.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이다. 1600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세자시강원문학(世子侍講院文學) 등을 지냈다.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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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박여량의 친필 일기. 박여량 『감재일기』는 박여량(朴汝樑)[1554~1611]의 후손 박호정이 2011년 11월 함양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상설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박여량의 자는 공간(公幹), 호는 감수재(感樹齋)이다. 본관은 삼척이다. 박여량은 지금의 함양군 수동면에서 태어났다. 1600년(선조 33)에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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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효우촌에서 출생한 개암 강익의 문집. 강익(姜翼)[1523~1567]의 자는 중보(仲輔), 호는 개암(介庵)·송암(松庵), 본관은 진주이다. 당곡(堂谷) 정희보(鄭希輔)[1488~1547]에게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1520~1578], 구졸암(九拙菴) 양희(梁喜)[1515~1580] 등과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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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정재기의 문집. 정재기(鄭在箕)[1811~1879]의 자는 오이(五而), 호는 개은(介隱)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헌릉참봉을 지낸 정환보(鄭煥輔)이다. 어머니는 청송심씨(靑松沈氏)로, 심능간(沈能簡)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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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벽송사에서 수도한 승려 응윤의 문집. 응윤(應允)[1743~1804]은 조선 후기 승려로, 출가 후 처음 받은 법명은 관식(慣式)이었다. 속가의 성은 민씨(閔氏)이며, 본관은 여흥이다. 법호는 경암(鏡巖)으로, 집이 경호(鏡湖) 근처에 있어서 사람들에 의하여 붙여졌다. 15세에 출가하여 진희장로(震熙長老)에게서 머리를 깎고 지리산 경내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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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경상남도 함양군에 거주한 유학자 정동의 문집. 정동(鄭棟)[1741~1793]의 자는 백직(伯直), 호는 경재(敬齋)이다.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할아버지는 각헌(覺軒) 정동학(鄭東鶴)[1688~1721], 아버지는 인재(忍齋) 정대징(鄭大徵)이다. 어머니는 재령이씨(載寧李氏) 이익배(李益培)의 딸이다.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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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인 우정규의 저술. 우정규(禹禎圭)[1718~?]의 자는 여보(汝寶),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우형하(禹亨夏), 아버지는 우서주(禹徐疇), 어머니는 노세첨(盧世瞻)의 딸이다. 1647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766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예문관 검열이 되었고, 통례원(通禮院) 우통례(右通禮)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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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에 거주한 고대 정경운의 필사본 일기. 정경운(鄭慶雲)[1556-?]의 자는 덕옹(德顒), 호는 고대(孤臺)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에서 살았다. 당곡(唐谷) 정희보(鄭希輔)[1488~1547]의 손자이다. 박여량(朴汝樑)[1554~1611], 박손(朴𧂍), 노사상(盧士尙)[1559~1598], 정경룡(鄭景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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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의 유학자 이육의 시문집. 이육(李㻙)[1827~1898]의 자는 진화(振和), 호는 곡은(谷隱)이다.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아버지는 부호군 이성일(李成一)이다. 어머니는 풍천노씨(豊川盧氏) 노광석(盧光碩)의 딸이다. 이육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 용전(龍田) 송내희(宋來熙)에게 수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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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에 세거한 광산김씨 집안의 유문을 모아 간행한 단행본. 김기율(金箕律)[1829~1892], 김재경(金在景)[1882~1935], 김정현(金定鉉) 등이다. 1981년에 김귀현(金貴鉉)이 선조의 유문을 모아 간행하였다. 『광산세고(光山世稿)』는 총 5권 1책의 석판본이다. 반곽은 16.0×20.0㎝이다. 사주쌍변이고, 행마다 경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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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서 개항기까지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노광무의 시문집. 노광무(盧光懋)[1808~1893]의 자는 순가(舜嘉), 호는 구암(懼菴)·송파(松坡)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노광리(盧光履)의 문인으로, 1828년(순조 28)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였다. 아버지가 병에 들자 치료하기 위하여 낙향하여서 구암서당(懼庵書堂)을 짓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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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에서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김시한의 문집. 김시한(金時瀚)의 자는 태진(泰珍), 호는 수보(修甫)·규봉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아버지는 김영현(金瑛賢), 어머니는 광주김씨 김홍진(金洪震)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당시 문헌동(文獻洞)]에 거주하였다. 하겸진(河謙鎭)[1870~1946]에게 수학하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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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가을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강수형의 문집. 강수형(姜壽馨)[1862~1890]의 자는 백윤(伯潤), 호는 귤암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무산(武山) 강용하(姜龍夏)[1840~1908]이다. 어머니는 진양하씨로, 하대련(河大連)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文正里)에서 태어났다. 문정리는 문헌공(文憲公) 정여창(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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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학자 이사엽에 관한 사실을 모아 편찬한 실기. 이사엽(李師燁)[1742~1825]의 초명은 사덕(師德), 자는 군필(君苾), 호는 나졸재(懶拙齋)이다. 본관은 성산(星山)이다. 아버지는 이성창(李星昌), 어머니는 함양박씨 박대유(朴大裕)의 딸이다. 경상도 안의현 중동리[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도림리]에서 태어났다. 늑천(櫟泉) 송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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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출신인 난곡 우석일의 문집. 3권 1책 목활자본의 『난곡집(蘭谷集)』 이본(異本)이 있다. 우석일(禹錫一)[1612~1666]의 자는 자행(子行), 호는 난곡(蘭谷),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인 눌계(訥溪) 우형(禹悙)에게 가학을 전수받고, 17세에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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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있는 남계서원의 사적과 연원 등을 기록한 서원지. 『남계서원지』는 남계서원과 관련한 제반 사항과 향사(鄕祠)[이름난 학자, 충신 등의 공적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집을 세우고 제사지내는 사당]된 인물들의 사실을 간략히 수록하고 있다. 남계서원은 1552년에 건립되었으며, 1566년에 사액(賜額)[왕조 시대 때 임금이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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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효리 출신인 남계 표연말의 문집. 표연말(表沿沫)[1449~1498]의 자는 소유(少游), 호는 남계(藍溪)·평석(平石)이다. 본관은 신창(新昌)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효리에서 태어났다.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문인으로, 김굉필(金宏弼)[1454~1504]·정여창(鄭汝昌)[1450~1504] 등과 교유하였다. 경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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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서평촌 출신인 남계 임희무의 문집. 임희무(林希茂)[1527~1577]의 자는 언실(彦實), 호는 남계이다. 본관은 나주(羅州)다. 경상남도 함양군 서평촌(黍坪村)[지금의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서평] 출신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을 사사하고, 개암(介庵) 강익(姜翼)[1523~1567] 등과 교유하였다. 1552년에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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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활동한 유학자 민치홍의 문집. 민치홍(閔致鴻)[1859~1919]의 초명(初名)은 치은(致殷), 자는 운거(雲擧)이다. 호는 농운(農雲)·화강(華岡),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아버지는 송암(松菴) 민동혁(閔東爀), 어머니는 해주정씨이다. 경상도 진주부 진주군 가곡[현재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가선리]에서 태어났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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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태어난 뇌계 유호인의 시문집. 유호인(兪好仁)[1445~1494]의 자는 극기(克己), 호는 임계(林溪)·뇌계(㵢溪)이다,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문인이다. 1462년(세조 8) 생원시에 합격하고 1472년 김종직을 따라 지리산(智異山)[높이 1,915.4m]을 유람하였다. 14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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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전후로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우형의 문집. 우형(禹悙)[1567~1652]의 자는 군면(君勉), 호는 눌계(訥溪)·눌계재(訥溪齋)이다.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추증된 우순보(禹舜輔)이다. 어머니는 팔계정씨(八溪鄭氏)로, 정원보(鄭元俌)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 화림 출신이다.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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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에 거주한 당곡 정희보의 문집. 정희보(鄭希輔)[1488~1547]의 자는 중유(仲猷), 호는 당곡이다. 본관은 진양이다. 정희보의 선조는 남해현 사람이며, 정희보부터 함양에 이사하여 살았다. 만년에는 후진 양성을 소임으로 여겨 노진(盧禛)[1518~1578], 이후백(李後白)[1520~1578], 양희(梁喜)[1515~1580], 강익(姜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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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경상남도 함양군수를 지낸 조종도의 문집. 조종도(趙宗道)[1537~1597]의 자는 백유(伯由), 호는 대소헌(大笑軒)이다.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어려서 동산옹(東山翁) 정두(鄭斗)의 문하에 있었으며,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에게 배웠다. 1558년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유성룡(柳成龍)[1542~1607]·김성일(金誠一)[15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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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정희운의 문집. 정희운(鄭熙運)[1678~1745]의 자는 태오(泰吾), 호는 동봉(東峯)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7대손이다. 아버지는 정세정(鄭世楨)이다. 어머니는 남원양씨로, 사재감 참봉 양지영(梁地英)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구라마을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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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함양군수를 지낸 매계 조위의 문집. 조위(曺偉)[1454~1503]의 자는 오룡(五龍)·태허(太虛), 호는 매계, 시호는 문장(文莊)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아버지는 조계문(曺繼門)이다. 어머니는 재취부인 문화유씨(文化柳氏)로, 유문(柳文)의 딸이다. 자형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한훤당(寒暄堂) 김굉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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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매암 조식의 문집. 조식(曺湜)[1526~1572]의 자는 유청(幼淸), 호는 매암(梅菴)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아버지는 진사 조건(曺健)이고 어머니는 참의를 지낸 김이성(金以誠)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연리[당시 석복촌(席卜村)]에서 태어났다. 1561년(명종 16)에 남계서원을 창건하여 정여창(鄭汝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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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정복현의 문집. 정병하(鄭昞夏)와 정우진(鄭禹鎭)은 모두 발문에 간행 시기를 기록하지 않았다. 다만 권도용(權道溶)[1877~1936]이 발문에서 ‘병자년’이라 했으니 생몰년에 비추어 보면 1936년이다. 정복현(鄭復顯)[1521~1591]의 자는 수초(遂初), 호는 매촌(梅村)이다. 본관은 서산(瑞山)이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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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서 개항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인 무산 강용하의 문집. 강용하(姜龍夏)[1840~1908]의 자는 덕일(德一), 호는 무산(武山)이다. 본관은 진양이며, 거주지는 경상남도 함양이다. 미산(薇山) 정환주(鄭煥周)[1833~1899]와 종유하며 영향을 많이 받았고, 고산(鼓山) 임헌회(任憲晦)[1811~1876]에게 나아가 수학하였다. 문망(文望)[학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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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학자 양처제의 시문집. 양처제(梁處濟)[1643~1716]의 자는 계통(季通), 호는 묵재(黙齋)이다. 본관은 남원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효우촌(孝友村)에서 태어났고, 말년에는 곡성면 오지리[지금의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오지리]로 이주하여 심성을 수양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구졸암(九拙菴) 양희(梁喜)[1515~1580], 할아버지는 의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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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인 일두 정여창의 문집.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자는 백욱(伯勗), 호는 일두(一蠹)·수옹(睡翁), 시호는 문헌(文獻),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과 함께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 문하에서 배웠다. 1490년 별시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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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개평마을에서 태어난 물재 노광리의 문집. 노광리(盧光履)[1775~1856]의 호는 물재(勿齋),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1403~1463]의 후손이다. 경서와 사기에 통달하였고, 성리학에 더욱 깊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성학십도」를 모방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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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출신 정환주의 문집. 정환주(鄭煥周)[1833~1899]의 자는 명신(命新), 호는 미산(薇山)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개평마을에서 태어났다. 두 동생을 데리고 화림사(花林寺)[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오봉리], 법화사(法華寺)[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두류산(頭流山)[지금의 지리산], 백무동(白霧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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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정동의의 문집. 정동의(鄭東義)[1815~1883]의 자는 형지(亨之), 호는 백암(栢菴)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정덕화(鄭德和), 어머니는 신창표씨(新昌表氏)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학림(學林)에서 태어났다. 저포(樗圃) 노광주(盧光柱), 자애(紫崖) 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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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강응황의 문집. 윤석(尹晳)이 지은 묘지(墓誌)에 따르면 강응황(姜應璜)의 생년은 가정(嘉靖) 신미년(1571), 졸년은 숭정(崇禎) 갑신년(1644)이다. 자는 위서(渭瑞), 호는 백천(白川)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사복시 판관을 지낸 강칭(姜偁)[1544~1597]이다. 어머니는 진양하씨로, 별검 하춘년(河春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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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에서 태어난 백초 노형하의 시문집. 노형하(盧亨夏)[1620~1654]의 자는 장경(長卿), 호는 백초(白草)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문효공(文孝公)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이다. 7세 때 부친상을 당하고 어머니의 고향 전라북도 남원으로 이거하였다. 1646년(인조 24)에 진사에 합격하고 1648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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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조경덕의 문집. 조경덕(曺敬德)[1556~1643]의 자는 득이(得而), 호는 보계(葆溪)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아버지는 매암(梅菴) 조식(曺湜)[1526~1572]이다. 어머니는 함양박씨(咸陽朴氏)로, 박숙현(朴叔賢)의 딸이다. 경상남도 함양에 거주하였다. 당시 삼고선생(三古先生)으로 불리었다. 사호(思湖) 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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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노광리가 편집한 소아과 전문 의서. 노광리(盧光履)[1775~1856]의 호는 물재(勿齋), 본관은 풍천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1403~1463]의 후손이다. 경서와 사기에 통달하였고, 성리학에 더욱더 깊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성학십도(聖學十圖)」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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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출신인 전병순의 문집. 전병순(田秉淳)[1816~1890]의 자는 이숙(彛叔), 호는 부계(扶溪)·겸와(謙窩)이다. 본관은 담양(潭陽)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추천(楸川)[지금의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일대]에서 태어났으며, 전석채(田錫采)의 아들이다. 홍직필(洪直弼)[1776~1852]의 문인으로, 조병덕(趙秉德)·전우(田愚)[18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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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과 인근의 사근도 소속 역인(驛人) 현황을 편제한 호구대장. 『사근도형지안(沙斤道形止案)』은 크기가 가로 55.5㎝, 세로 51.6㎝이며, 98매의 필사본이다. 사주단변에 30칸이 구분되어 있고, 각 장마다 도장이 찍혀 있다. 『사근도형지안』은 경상북도 문경시 옛길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747년(영조 23)에 작성된 호구대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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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강희맹의 시문집.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국오(菊塢)·운송거사(雲松居士)·무위자(無爲子) 등,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강석덕(姜碩德)[1395~1459]이다. 어머니는 청송심씨(靑松沈氏)로, 심온(沈溫)[1375~1418]의 딸이다. 어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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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노관의 문집. 노관(盧祼)[1522~1574]의 자는 자장(子將), 호는 사암(徙庵)·상재(尙齋)·앙사(仰思)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노우명(盧友明)[1471~1523]이다.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시민(權時敏)[1464~1523]의 딸이다.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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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권명희의 시문집. 권명희(權命熙)[1865~1923]의 자는 공립(公立), 호는 삼외재(三畏齋)·율산(栗山)이다. 본관은 안동이다. 아버지는 권병직(權秉直)이고 어머니는 하동신(河東藎)이다. 함양군 갈천리에서 태어났다. 18세에 송병선(宋秉璿)[1836~1905]을 찾아가 집지(執贄)[제자가 스승을 처음으로 뵐 때 예폐를 가지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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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서 개항기까지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정취동 출신 허원식의 시문집. 1915년에 간행된 4권 2책의 『삼원당문집(三元堂文集)』 이본(異本)이 있다. 이 문집의 서문은 심재(深齋) 조긍섭(曺兢燮)[1873~1933]이 지었다. 허원식(許元栻)[1828~1891]의 자는 순필(舜弼), 호는 삼원당(三元堂), 본관은 하양(河陽)이다. 21세에 사미헌(四未軒) 장복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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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활동한 서계 양홍주의 문집. 양홍주(梁弘澍)[1550~1610]의 자는 대림(大霖), 호는 서계(西溪)이다.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양희(梁喜)[1515~1580]이다.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로, 이연년(李延年)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에 거주하였다.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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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에 있던 장수사에서 복각된 언해 불서. 『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諺解)』은 당나라 영가(永嘉)대사 현각(玄覺)[665~713]이 선 수행 방법을 열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불서이다. 『선종영가집』은 송나라 행정(行靖)이 주석하였고, 다시 정원(淨源)이 과문(科文)[경론의 뜻을 알기 쉽게 해석하기 위하여 내용에 따라 나눈 문단]으로 정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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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에 경상남도 함양군 개평에 거주한 노긍수의 시문집. 노긍수(盧兢壽)[1823~1899]의 자는 시용(時用), 호는 소은(小隱), 본관은 풍천이다. 아버지는 노광직(盧光稷)으로, 효성으로 사헌부 감찰에 증직(贈職)[사망한 자에게 승급되는 품계]하였다. 진주(晉州)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경상남도 함양군 개평(介坪)으로 이주하였다. 1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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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강명세의 문집. 강명세(姜命世)[1632~1708]의 자는 덕수(德秀), 호는 소치재(笑癡齋)·소치자(笑癡子)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강문재(姜文載)이다.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 윤영남(尹英男)의 딸이다. 1670년(현종 11)에 현재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마산리[당시 마안(馬鞍)] 서쪽 산기슭 아래에 작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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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우여무의 문집. 우여무(禹汝楙)[1591~1657]의 자는 대백(大伯), 호는 속천(涑川)이다.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아버지는 우형(禹悙)[1567~1652], 어머니는 화순최씨(和順崔氏) 최응회(崔應會)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당시 이전(泥田)]에서 태어났다.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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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에 거주한 송재 노숙동의 문집. 노숙동(盧叔仝)[1403~1463]의 자는 화중(和仲), 호는 송재(松齋)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1427년(세종 9) 문과에 급제하고 1436년 문과 중시(文科重試)에 을과로 급제한 뒤 집현전 교리, 예문관 직제학, 형조참판, 호조참판 등을 지냈다. 세조 때 청백리에 녹선(錄選)[추천되어 뽑힘]되었으며,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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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전후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강문필의 문집. 강문필(姜文弼)의 자는 희로(姬老), 호는 송정(松亭)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강여중(姜汝仲)다. 생몰연도는 알 수 없다. 다만 노진(盧禛)[1518~1578]과 임훈(林薰)[1500~1584)에게 수학한 것으로 보아 16세기 후반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매암(梅庵) 조식(曺湜), 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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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에 거주한 송탄 정홍서의 문집. 정홍서(鄭弘緖)[1571~1648]의 자는 극승(克承), 호는 송탄,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에 거주하였다. 아버지는 장수(長水)현감을 지낸 정대민(鄭大民)[1551~1598]이다. 1628년(인조 6)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학정(成均館學正)을 지냈다. 남계서원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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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백평 출신 이수완의 시문집. 이수완(李秀完)[1676~1744]의 자는 공직(公直), 호는 수족당(睡足堂)·내왕헌(來往軒)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백평(栢坪)[지금의 함양군 수동면 내백리 잣들마을]에 거주하였다. 세 차례 초시에 선발되었으나 당시 벼슬아치의 방해로 끝내 합격하지 못하였다. 금호(錦湖) 가에 수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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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노우명의 문집. 노우명(盧友明)[1471~1523]의 자는 군량(君亮), 호는 신고당(信古堂)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아버지는 노분(盧昐)이다. 어머니는 거창신씨(居昌愼氏)로, 신선경(愼先庚)의 딸이다.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1450~1504]에게 수학하였다. 1498년(연산군 4)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만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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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서상두의 문집. 서상두(徐相斗)[1854~1907]의 자는 순거(舜擧), 호는 심정(心亭)이다. 본관은 대구(大邱)이다. 아버지는 음직(蔭職)으로 감역(監役)을 지낸 서인순(徐璘淳)이다. 어머니는 부안김씨(扶安金氏)로, 김희감(金希鑑)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웅평리에서 태어났으며, 1891년 진사시에 합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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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출신 유학자 정문섭의 문집. 정문섭(鄭文燮)[1859~1929]의 자는 주성(周聖), 호는 아석(我石)이다.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아버지는 정수대(鄭秀大)이다. 어머니는 거창신씨(居昌慎氏)로, 신성선(愼性宣)의 딸이다. 친아버지는 정수갑(鄭秀甲), 친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 권계성(權桂成)의 딸이다.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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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간행된,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도희령의 문집. 도희령(都希齡)[1539~1566]의 자는 자수(子壽), 호는 양성헌(養性軒)이다.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아버지는 진사 도득린(都得麟)이다. 어머니는 야성송씨(冶城宋氏)로, 송희동(宋熙仝)의 딸이다. 당곡(唐谷) 정희보(鄭希輔)[1488~1547]와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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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에서 현대까지 경상남도 함양에 거주한 여암 정도현의 문집. 정도현(鄭道鉉)[1895~1977]의 자는 경부(敬夫), 호는 여암(厲菴)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함양에서 거주하였다. 정도현이 지은 시문을 정선하여 5책으로 편집하고 보관해 오다가 문하생 박인서(朴仁緖), 배승혁(裵承赫) 등이 시문을 천재지변으로 잃게 되거나 좀이나 쥐로 인하여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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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부터 근대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양군 지역의 역대 소과 및 대과 합격자 명단. 연계(蓮桂)는 연방(蓮榜)과 계방(桂榜)을 합하여서 일컫는 말이다. 소과인 생원과 진사에 급제한 것을 연방, 대과에 급제한 것을 계방이라고 한다. 연계안은 소과와 대과에 급제한 인물들의 명단을 기록한 것이다. 인물 명단에는 본관, 과거 합격 연대, 관직, 거주지 등을 아울러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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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안의현감을 지낸 박지원의 문집. 박지원(燕巖集)[1737~1805]의 자는 미중(美仲), 호는 연암(燕巖) 또는 연상(煙湘)·열상외사(洌上外史),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홍대용(洪大容)[1731~1783], 이덕무(李德懋)[1741~1793], 박제가(朴齊家)[1750~1805], 이서구(李書九)[1754~1825], 유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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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오연 김면운의 문집. 김면운(金冕運)[1775~1839]의 자는 천찬(天贊)이고 호는 오연(梧淵)이다. 본관은 의성이다. 덕천서원(德川書院), 임천서원(臨川書院), 정강서원(鼎岡書院), 청곡서원(淸谷書院) 등의 원장을 지냈다. 만년에 용봉리(龍鳳里)에 ‘오연(梧淵)’이라는 집을 지어 우거하였다. 김면운의 종현손 김황(金榥)[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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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출신인 옥계 노진의 문집. 노진(盧禛)[1518~1578]의 자는 자응(子膺), 호는 옥계(玉溪)·우재(迂齋)이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며,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현재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에서 태어났다. 정희보(鄭希輔)[1488~1547]에게 배우고 김인후(金麟厚)[1510~1560], 조식(曺植)[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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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박문영의 문집. 박문영(朴文楧)[1570~1623]의 자는 군수(君秀), 호는 용호(龍湖)이다.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아버지는 형조참판에 추증된 박행(朴荇)이다. 어머니는 풍천노씨(豊川盧氏)로, 노사상(盧士祥)의 딸이다. 경상도 산음현 효촌(曉村)[지금의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에서 태어났고,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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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노사상의 문집. 노사상(盧士尙)[1559~1598]의 자는 지부(志夫), 호는 우계(迂溪)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아버지는 제원도찰방(濟原道察訪)을 지낸 노관(盧祼)이다. 어머니는 신창표씨(新昌表氏)로, 표곤운(表晜雲)의 딸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오평(梧坪)[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거주하였다. 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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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우적의 문집. 우적(禹績)[1509~1582]의 자는 공숙(功叔), 호는 우천(愚泉)이다.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당시 우항(牛項)]에서 태어났다.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에게 수학하였고,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1529~1590]과 이요당(二樂堂) 주이(周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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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송평리 출신의 유학자 우홍전의 문집. 우홍전(禹洪傳)[1702~1786]의 자는 군보(君甫), 호는 월주(月洲)·농와(聾窩), 본관은 단양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송평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함묵당(含黙堂) 우필인(禹弼寅), 아버지는 돈암(敦菴) 우완(禹琬), 어머니는 흥덕장씨(興德張氏)이다. 전주최씨(全州崔氏)를 아내로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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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경상남도 함양에서 거주한 위고 노근수의 시문집. 노근수(盧近壽)[1845~1912]의 자는 순오(舜午), 호는 위고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일찍이 허전(許傳)[1797~1886]과 유주목(柳疇睦)[1813~1872]을 스승으로 섬겨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닦는 방법을 배웠다. 이건창(李建昌)[1852~1898], 이남규(李南珪)[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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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유학자 허용두의 문집. 허용두(許容斗)[1851~1934]의 자는 군백(君伯), 호는 위암(渭巖), 본관은 하양(河陽)이다.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보산리 정취마을에서 태어났다.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을 지낸 삼원당(三元堂) 허원식(許元栻)[1828~1892]의 아들이다. 19세에 아버지를 따라 가 성재(性齋) 허전(許傳)[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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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일두 정여창의 문집.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자는 백욱(伯勗), 호는 일두·수옹(睡翁)이다. 본관은 하동이다. 김굉필(金宏弼)[1454~1504]과 함께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문하에서 배웠다. 1490년 별시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시강원설서를 지냈다. 1498년 무오사화로 인하여 함경도 종성(鍾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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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시기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활동한 안광진의 문집. 안광진(安光鎭)[1860~1935]의 자는 치형(致亨), 호는 임천(瀶川)이다. 본관은 순흥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장항리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는 안택륜(安宅倫), 할아버지는 안극행(安克行), 아버지는 안재삼(安在三)이다. 외할아버지는 하상린(河尙鱗)이다. 사촌형 지산(芝山) 안효진(安孝鎭)과 학문을 연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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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수를 지낸 유학자 김종직의 시문집.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자는 효관(孝盥)·계온(季昷), 호는 점필재,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본관은 선산(善山)이다. 아버지는 강호산인(江湖散人) 김숙자(金叔滋)[1389~1456]이다.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 사재감정 박홍신(朴弘信)[1373~1419]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밀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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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때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항전했던 곽준의 문집. 곽준(郭䞭)[1551~1597]의 자는 양정(養靜), 호는 존재(存齋), 시호는 충렬이다. 본관은 현풍(玄風)이다. 배신(裵紳)[1520~1573]에게 수학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면(金沔)[1541~1593]의 막하에 들어가 많은 공을 세웠다. 1594년 안음현감[안음은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이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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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간행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서대순의 문집. 서대순(徐玳淳)[1810~1889]의 자는 윤백(允伯), 호는 졸암(拙菴)이다. 본관은 대구(大邱)이다. 아버지는 병조참판에 추증된 서기보(徐麒輔)이다. 어머니는 김녕김씨로, 김세태(金世泰)의 딸이다. 저포(樗圃) 노광주(盧光柱) 등과 교유하였다. 1864년(고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공부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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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노상의 문집. 노상(盧祥)의 자는 경휴(景休), 호는 졸재(拙齋)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아버지는 영경전참봉(永慶殿參奉)을 지낸 노우영(盧友英)[1471~1551]이다. 어머니는 진양정씨(晉陽鄭氏)로, 정윤창(鄭尹昌)의 딸이다. 두계(杜溪) 서암(西巖)에 은거하며 학문에 힘썼다. ‘졸렬함으로써 뜻을 고상히 한다’[졸이상지(拙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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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학자 임만희의 문집. 임만희(林晩熙)[1872~1933]의 자는 백여(栢汝), 호는 종와(鍾窩)이다.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아버지는 임수명(林秀明)이다. 어머니는 풍천노씨 송재(松齋) 노숙동(盧叔仝)[1403~1463]의 후손인 노한수(盧漢壽)의 딸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 갈계리[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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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생 유학자 정복주에 대한 실기. 정복주(鄭復周)[1367~?]의 자는 사고(師古), 호는 죽당(竹堂)·육괴(肉塊)이다. 본관은 하동이다.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다. 조선 전기 문신 겸 학자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할아버지이다. 고려조에서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를 지냈으며, 효성으로 정려가 내려지고 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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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서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이규한의 문집. 이규한(李圭翰)[1866~1927]의 자는 붕거(鵬擧), 호는 죽헌(竹軒)이다. 본관은 월성(月城)이다. 아버지는 이시영(李始榮)이다. 어머니는 풍천노씨(豊川盧氏)로, 노광중(盧光中)의 딸이다. 외가인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다.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1846~1919]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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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양군에 거주한 박명부의 시문집. 박명부(朴明榑)[1571~1639]의 자는 여승(汝昇), 호는 지족당(知足堂)이다. 본관은 밀양이다. 경상남도 함양에서 살았다. 정구(鄭逑)[1543~1620] 문인으로, 예설(禮說)[예절에 관한 학설]에 밝았다. 1590년 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부정자가 되었다. 1593년 박사에 제수되었고, 호조좌랑·사헌부지평·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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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간행한 전오륜의 실기. 전오륜(全五倫)의 자는 중지(仲至), 호는 채미헌(採薇軒)이다. 본관은 정선(旌善)이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될 때 고려 왕조에 대한 절개를 지켜 두문동으로 들어간 72현 가운데 한 명이다. 1357년 국자감 생원, 이듬해 음직(蔭職)[과거에 의하지 않고 부모와 조부모의 공으로 하는 벼슬]으로 봉선고판관(奉先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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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있는 청계서원의 사적과 연원 등을 기록한 서원지. 『청계서원지(靑溪書院誌)』는 청계서원과 관련한 제반 사항과 주향자(主享者)[사우(祠宇)나 서원(書院) 등에서 위패를 주벽(主壁)으로 모시어 제향하는 일을 맡은 책임자]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1464~1498]의 연보가 수록되어 있다. 청계서원은 김일손이 공부하던 청계정사가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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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하원순의 문집. 하원순(河元淳)[1858~1924]의 자는 치경(致敬), 호는 청봉(晴峯)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하석간(河錫幹)이다. 어머니는 재취부인 풍천노씨(豊川盧氏)로, 노광우(盧光禹)의 딸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마을[당시 우동(愚洞)]에서 태어났다. 전라남도 남원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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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강희맹이 편찬한 한문 소화집.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무위자(無爲子)·운송거사(雲松居士)·국오(菊塢)·만송강(萬松岡),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본관은 진양(晉陽)이다. 아버지는 지돈녕부사 강석덕(姜碩德)[1395~1459], 어머니는 영의정 심온(沈溫)[1375~1418]의 딸이다. 1447년(세종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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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부터 현대까지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출신 유학자 권도용의 문집. 권도용(權道溶)[1877~1963]의 자는 호중(浩仲), 호는 추범·오은졸부(吳隱拙夫)·창남학인(滄南學人)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및 산청군 단성면 등지에서 거주하였다.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1846~1919]에게 수학하였다. 『경남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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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유학자 박용근의 문집. 박용근(朴容根)[1857~1915]의 자는 여회(汝晦), 호는 춘사(春史), 본관은 함양이다. 7대조 지지당(止止堂) 박승뢰(朴承賚) 때부터 운봉현(雲峯縣)[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의 통일신라 이래 행정 구역]에 거주하였으며, 현재의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갈포(葛圃) 박문식(朴文植)은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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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정수민의 시문집. 정수민(鄭秀民)[1577~1658]의 자는 자빈(子賓), 호는 춘수당(春睡堂)·동리(東里)이다.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증손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에서 태어났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하에서 배웠다. 성품이 공손하고 행동거지가 단정하고 겸손하여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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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도천리 출신 유학자 권정용의 문집. 권정용(權正容)[1874~1899]의 자는 문중(文中), 호는 춘파(春坡)이다. 본관은 안동이다. 할아버지는 권헌진(權憲鎭), 아버지는 권재모(權在模), 어머니는 진산하씨(晉山河氏)이다. 경상도 함양군 우항(愚衖)[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도천리]의 외가에서 태어났다. 추범(秋帆) 권도용(權道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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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활동한 정희보의 문집. 정희보(鄭熙普)[1683~1763]의 자는 중욱(仲旭), 호는 퇴성헌(退省軒),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1725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내섬시 직장(內贍寺直長)에 제수되었다. 1733년에는 사간원 정언이 되었고, 시강원 보덕과 동부승지 등을 지냈다. 문장에 뛰어나 조하망(曺夏望), 강박(姜樸) 등과 교유(交遊)하며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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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서 후기에 걸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노주의 문집. 노주(盧冑)[1557~1617]의 자는 경승(景承), 호는 풍고(風皐)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아버지는 형조참판에 추증된 노사준(盧士俊)이다. 어머니는 나주임씨(羅州林氏)로, 임각(林珏)의 딸이다. 작은할아버지 노진(盧禛)[1518~1578]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1588년(선조 21)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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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에 세거한 풍천노씨 가문에서 조상의 언행과 유훈 등을 모아 정리한 문집. 노광리(盧光履), 노광두(盧光斗)[1772~1859] 등이 조상의 언행과 유훈 등을 정리하고 편집하여 1848년에 간행하였다. 『풍천노씨가학십도(豊川盧氏家學十圖)』는 1책[37장]의 목판본으로, 전체 크기는 32.2×21.5㎝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으로 반곽(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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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평촌리 주곡마을의 풍천노씨 집안 54명이 남긴 유문을 모아 간행한 단행본. 노윤(盧昀) 등 54명이다. 1904년 10월에 후손 노정현(盧正鉉)이 족종형(族從兄)[항렬이 같은 겨레붙이 사이에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 노탁현(盧卓鉉)과 함께 졸존재(拙存齋) 노분(盧昐)[1437~1478] 이하 7세까지의 유문을 수집하고 편차하여 2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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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의 유학자 정재경의 문집. 정재경(鄭在璟)[1881~1959]의 자는 내훈(乃薰), 호는 학강(學岡), 본관은 하동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효리마을에서 태어났다. 고조할아버지 정진망(鄭鎭望)은 도암(陶庵) 이재(李縡)[1680~1746]의 문인이다. 아버지 정환식(鄭煥植)은 호가 일송(一松)이며, 어머니는 죽산박씨 박필희(朴必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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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덕무가 경상도 함양 지역에서 저술한 영남지방 견문기. 이덕무(李德懋)[1741~1793]의 자는 무관(懋官), 호(號)는 아정(雅亭)·형암(炯庵)·청장관(靑莊館)·동방일사(東方一士)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무림군(茂林君) 이선생(李善生)[1410~1475]의 14세손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이성호(李聖浩)[1718~?]이다. 어머니는 반남박씨(潘南朴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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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서상건의 문집. 서상건(徐相建)[1865~1911]의 자는 순오(舜五), 호는 해사(海史), 본관은 달성이다. 오늘날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웅평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서기보(徐麒輔)는 첨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냈고, 아버지 서인순(徐璘淳)은 호가 화헌(華軒)이다. 조상의 공훈(功勳)으로 감역(監役)을 지냈다. 모친은 밀양박씨 참의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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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출신 유학자 노사예의 실기. 노사예(盧士豫)[1538~1594]의 자는 입부(立夫), 호는 홍와(弘窩),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신고당(信古堂) 노우명(盧友明)[1471~1523], 작은아버지는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이다. 1552년에 함양의 남계서원이 창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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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박인순이 편찬한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현의 행정 사례집. 『화림지(花林誌)』에서 ‘화림’은 안음과 함께 안의[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의 다른 이름이다. 조선 시대 안의현은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서하면·서상면, 거창군 마리면·위천면·북상면 일대를 포함한다. 『화림지』의 저자가 박인순(朴寅淳)이라는 것은 확인할 수 있으나 살펴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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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출신인 서상엽의 문집. 서상엽(徐相曄)[1862~1914]의 자는 순명(舜明), 호는 화하(華下)이다. 본관은 달성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웅평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서기보(徐麒輔)[1804~?]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냈고, 아버지 서인순(徐璘淳)은 호가 화헌(華軒)이다. 조상의 공훈(功勳)으로 감역(監役)을 지냈다. 어머니는 밀양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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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장항리 출신 유학자 지산 안효진의 중국 여행기. 안효진(安孝鎭)[1855~1943]의 자는 경원(敬元), 호는 지산(芝山)이다. 본관은 순흥으로, 안향(安珦)[1243~1306]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안극문(安克文), 아버지는 안재일(安在一), 어머니는 임천조씨(林川趙氏)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장항리에서 태어났다. 도통사(道統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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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 거주한 화헌 서인순의 시문집. 서인순(徐璘淳)[1827~1898]의 자는 은경(殷卿), 호는 화헌(華軒)이다. 본관은 대구(大邱)이다.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서인순의 13대조이다. 5살 때부터 서당에서 공부하였으며, 20살에 향당에 이름이 알려졌다. 번번이 향시에 낙방하자 과거에 뜻을 접고 위기지학(爲己之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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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인 황오의 문집. 황오(黃五)[1816~?]는 자가 사언(四彦), 초명은 이로(里老), 호는 녹차(綠此)·한안(漢案)·동해초이(東海樵夷)이다.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공배리에서 태어났다. 방촌(尨村) 황희(黃喜)[1363~1452]의 후손이다. 강신용(姜信鏞)과 가까운 족친(族親)들이 글을 수집하여 문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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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에 활동한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민재남의 문집. 민재남(閔在南)[1802~1873]의 초명은 수일(壽一), 자는 겸오(謙吾), 호는 회정·청천(聽天)·자소옹(自笑翁)·명곡주인(明谷主人)이다.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아버지는 감찰에 추증된 민이환(閔以瓛)이다. 어머니는 풍천노씨(豊川盧氏)로, 노능(盧稜)의 딸이다. 외가인 함양에서 태어났다. 1867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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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의 임대동이 쓴 실기. 임대동(林大仝)[1432~1503]의 자는 정숙(貞叔), 호는 회헌(晦軒),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조부 임상재(林尙宰) 때부터 경상남도 함양군 유림면 서주리에 거주하였다. 1474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임실 현감을 지냈다. 일찍이 김종직(金宗直)[1431~1492] 문하에서 유학하였다. 정여창(鄭汝昌)[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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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양 출신 유학자 노승의 문집. 노승(盧勝)[1572~1607]의 자는 이복(而復), 호는 휴휴자이다. 본관은 풍천(豊川)이다. 아버지는 별좌(別座)를 지낸 운고(雲皐) 노사훈(盧士訓)이다. 어머니는 함안조씨로, 조언(趙堰)의 딸이다. 학행(學行)[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사람]으로 천거되어 순릉참봉(順陵參奉)에 제수되고, 제용감봉사(濟用監奉事)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