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12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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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鳴梁大捷民草 |
영어공식명칭 | A Grass Roots in the Myeongnyang Sea Battle |
이칭/별칭 | 명량대첩 민초 이야기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은선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2016년 12월 03일 - 「명량대첩 민초」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성리 경로당에서 문찬운에게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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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7년 - 「명량대첩 민초」 해남군에서 펴낸 『설화로 피는 땅끝해남』상권에 수록 |
관련 지명 | 명량해협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
채록지 | 남성경로당 -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남성리길 24[영전리 1439-1] |
성격 | 설화|인물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이순신|해남 주민 |
모티프 유형 | 명량대첩|민초가 참여한 해전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명량대첩과 관련해 전해 오는 이야기.
[개설]
「명량대첩 민초」는 1597년 해남 주민들과 어선 4,000여 척이 명량대첩(鳴梁大捷)에 참여하여 조선 수군과 함께 왜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명량대첩 민초」는 2016년 12월 3일 북평면 영전리 남성경로당에서 채록하였으며, 구술자는 문찬운[남]이다. 2017년 해남군에서 펴낸 『설화로 피는 땅끝해남』상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문헌에는 명량대첩 당시 울돌목에서 이순신(李舜臣)[1545~1598] 장군이 열두 척의 배로 일본 수군을 대파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해남 주민들 사이에는 기록과 다른 이야기가 전해 온다. 명량대첩 당시에 경상남도 남해, 광양, 여수, 서해안 군산 등에서 고기를 잡는 어선과 종선, 그리고 노를 젓는 작은 배까지 모두 모였다고 한다. 조선 각지에서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모여든 배가 모두 합해 4,000척이 넘었으며, 일본 수군과 싸우기 위해 모인 조선의 백성들은 무기가 없어 대창 대신 방망이를 깎아 적군과 싸웠다고 한다. 해남 주민들은 “열두 척이 어떻게 이기냐? 국민의 참여와 어민들이 목숨 바쳐 일본 사람과 배들을 대전했기 때문에 일본에게 이길 수 있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모티프 분석]
「명량대첩 민초」의 모티프는 ‘명량대첩’, ‘민초가 참여한 해전’ 등이다. 문헌에 이순신이 피난선 100여 척을 전선으로 위장해 뒤에서 성원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전해 오기는 하지만 어선 4,000척이 함께 싸웠다는 기록은 없다. 「명량대첩 민초」에서 전쟁에 참여한 어선의 수는 물리적인 숫자가 아닌 상징적인 개념의 숫자인데,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데에 해남 주민을 비롯한 민초들의 희생과 단결이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음을 강조하는 기능을 한다. 「명량대첩 민초」에는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근거로 주민들 사이에 전해 오는 이야기를 사실화하여 해남의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