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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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孟津里 |
영어공식명칭 | Maengji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병삼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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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진리 -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 | |
성격 | 법정리 |
면적 | 2.611㎢ |
가구수 | 78가구 |
인구[남/여] | 144명[남자 70명|여자 74명]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맹진리(孟津里)는 처음에 ‘큰 나루가 있는 마을’이었기 때문에 ‘맏나루’라고 불렀는데, 한자로 표기하여 맹진이 되었다. 또한 ‘맏나루’가 ‘마나루’로 되어 마포(馬浦)라고 불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해남군 마포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포면의 맹진리, 대월리·평촌리·송석리·북창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맹진마을과 북창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맹진마을은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에 마포면에 속한 마을로 나온다. 맹진마을은 맹진리성지(孟津里城址)와 해남 맹진리 암각 매향비(海南孟津里岩刻埋香碑)[1406]와 연관지어 형성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구전에 의하면 고려 말부터 조선 성종까지 마씨(馬氏)가 거주하였다고 한다. 그 후 원주이씨(原州李氏) 이영화(李英華)의 아들 이예건(李禮健)이 1489년에 마산면 산막리에서 분가하여 정착하였다고 한다.
북창마을은 조선시대 해남 북쪽 세곡 수납을 위한 창(倉)이 있어서 ‘북창포’라 불렀다고 한다. 한국전쟁 이후까지 목포를 오가는 여객선이 운항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경찰지서와 오일장이 들어설 정도로 큰 마을이었다. 마을 입구 정미소는 북창포를 통하여 쌀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었다. 지금도 해남농협미곡처리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대생이보의 물레방아를 이용하여 목화솜을 틀거나 목화씨를 발라서 목포에 내다 팔았다. 1992년 4월 영산강 영암호지구 종합개발 사업으로 영암군 삼호면 황도와 해남군 산이면 구성리를 잇는 2.2㎞의 방조제가 완공되었다. 영암호 간척공사 이전에는 포구에 젓갈배가 들어와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자연환경]
마을의 서쪽에 만대산(萬代山)[443m]이 있고, 마을 앞으로 옥천면에서 발원한 옥동천이 흐르고 있다. 예전에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배를 댈 수 있는 북창포가 있었다. 옥동천이 계곡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현황]
맹진리(孟津里)는 북쪽으로 계곡면 덕정리, 동쪽으로 송석리, 남쪽으로 송석리, 서쪽으로 외호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2.611㎢이며, 맹진리, 북창리의 2개 행정리에 81세대, 144명[남자 70명, 여자 7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들의 생업은 농업이며, 주 소득원은 쌀과 보리이다. 특작물로 배추를 생산하고 있다. 농업용수는 마을 옆으로 흐르는 옥천천 물을 이용하고 있다.
교통은 지방도 제819호선이 마을을 북서에서 남동으로 비스듬히 지나고 국도 제13호선이 마을 동쪽으로 걸쳐 지나고 있다. 유적은 맹진리성지(孟津里城址)와 해남 맹진리 암각 매향비[전라남도 기념물 제137호, 1988년 12월 21일 지정] 등이 있다. 맹진마을 앞에는 수령 300~400년 된 이팝나무 1그루와 느티나무가 2그루가 서 있다.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보름에 당산나무 앞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맹진리 맹진 당제]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