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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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月松里 |
영어공식명칭 | Wols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월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문종안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월송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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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73년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월송리에서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월송리로 편입 |
월송리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월송리 | |
성격 | 법정리 |
면적 | 10.5㎢ |
가구수 | 243가구 |
인구[남/여] | 494명[남자 244명|여자 250명]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조선 명종 때 마을이 소나무 숲으로 우거져 있고, 소나무 위로 달이 뜨면 노송 아래 모여 마을 일을 의논하였다 하여 월송(月松)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또는 마을 모양이 앞산에서 보면 반달처럼 생겼다 하여 월송이라 한다는 설도 있다.
[형성 및 변천]
조선시대에는 영암군 송지시면에 속한 지역이었다가,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등리, 증산리, 송촌리, 수정리, 향교리를 병합하여 해남군 송지면 월송리로 개설되었다가, 1973년 해남군 현산면에 편입되었다. 현재 월송마을, 증산마을, 시등마을, 매화마을, 송촌마을, 향교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월송마을은 마을 내에 있는 10여 기의 지석묘군과 인근 증산마을의 백제 석실분으로 보아 마을 역사가 오래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정확한 마을 입향성씨와 입향조는 전하지 않는다. 증산마을은 지석묘군과 백제 석실분으로 미루어 강력한 세력의 선주민이 오래전에 정착하였던 곳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 정조 대[1776~1800]에 10여 호가 터를 닦고 정착하였다고 한다. 매화마을은 마을 주변에 화덕이나 기와장이 발견되며, 마을 뒷산에 고인돌 2기가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송촌마을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송지향’과 ‘부곡’이 있었던 지역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 전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향교마을은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향교동으로 나와 있다. 고려시대 송양현의 한 지역으로 충렬왕 대[1274~1308]에 안향이 최초의 문묘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자연환경]
서쪽에 가공산[335m], 남쪽에 달마산[489m]이 솟아 있고, 동쪽은 대둔산에서 닭골재를 지나 달마산으로 연결되는 준령이 남으로 뻗어 있다. 북쪽과 북서쪽으로 구산천을 따라 기름진 평야가 펼쳐진다.
[현황]
월송리(月松里)는 북쪽으로 구산리, 동쪽으로 북평면 이진리, 남쪽으로 북평면 서홍리, 서쪽으로 송지면 군곡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10.5㎢이고, 월송리, 증산리, 시등리, 매화리, 송촌리, 향교리의 6개 행정리에 243가구, 494명[남자 244명, 여자 25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며, 주 소득원은 쌀이다. 특작물은 양파, 마늘, 콩을 재배한다. 월송리에는 현산농협 월송지점과 월송5일시장이 있다.
문화유적으로 1986년 2월 17일 전라남도 시도기념물 제86호로 지정된 해남 월송리 조산 고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