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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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의 양재웅이 소장한 양만고의 시문집. 양만고(楊萬古)[1574~1654]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 선영에 묘가 있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도일(道一), 호는 감호(鑑湖)·돈호(遯湖)·비로도인(毗盧道人)이다. 할아버지는 돈령부 주부를 지낸 양희수(楊希洙)이고, 아버지는 부사를 역임한 봉래 양사언(楊士彦)이다. 1603년(선조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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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이남규가 포천을 거쳐 영흥 부사로 부임하는 노정과 영흥에서 겪은 일을 기록한 일기. 「갑오일기(甲午日記)」는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1855~1907]가 1894년[甲午年] 음력 5월 6일부터 12월 말일까지 영흥 부사(永興府使)가 되어 임지(任地)에서 겪은 일들을 일기체로 기록한 글이다. 「갑오일기」는 이남규의 문집인 『수당집(修堂集)』에 실려 있다. 「갑오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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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를 포함한 경기도 동부와 북동부의 산지를 포함하는 산맥. 경기도 동부[포천시, 가평군, 양주시 일대]와 북동부의 험준한 산지가 포함된 광주산맥은 태백산맥의 철령(鐵嶺) 부근에서 갈라져 서울 근처에 달한다. 광주산맥은 태백산맥의 금강산(金剛山) 부근에서 시작하여 남서 방향으로 서울 부근까지 이르는 산맥으로, 북서쪽은 추가령 구조곡(楸哥嶺構造谷), 남동쪽은 북한강(北漢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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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지역에서 궁예(弓裔)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궁예와 명성산」은 울음산에서 최후를 마쳤다는 인물담이고, 죽음을 맞이한 궁예[?~918]의 시신이 움직이지 않아서 그곳에 돌을 쌓아 무덤을 만들었다는 산소 유래담이다. 궁예는 후고구려[태봉]를 건국한 인물로, 아버지는 신라 경문왕(景文王)[?~ 875] 아니면 헌강왕(憲康王)[?~886]이고, 어머니는 이름이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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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지역에서 궁예(弓裔)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궁예왕 이야기」는 궁예[?~918]의 죽음과 관련된 지명을 설명하는 지명 유래담이자, 궁예의 호색함에 나라가 망하였다는 포학한 왕의 패망담이다. 궁예는 후고구려[태봉]를 건국한 인물로, 아버지는 신라 47대 헌강왕(憲康王)이고, 어머니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궁녀라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실려 있는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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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을 가는 길목으로서 경기도 포천시의 자연 지리적 조건과 지정학적 위치, 역사 문화적 특징 등을 살펴보고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미래 포천 관광 자원 개발에 대해 생각해 본다. 포천은 동서남북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영평천과 포천천이 T자형을 이루며 흐르고 있다. 면적은 서울의 1.4배 크기이다. 우리나라의 중앙에 위치한 관계로 동서·남북 교류의 중심지로서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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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포천 출신의 문신인 조성하가 저술한 기행 일기. 조성하(趙成夏)[1845~1881]는 개항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다. 본관은 풍양, 자는 순소(舜韶), 호는 소하(小荷)이다. 병조 판서 조병준(趙秉駿)의 아들로 조병구(趙秉龜)에게 입양되었으며, 신정 왕후(神貞王后) 조씨(趙氏)의 조카이다. 1861년(철종 12)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1864년 고종 즉위와 함께 동부승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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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익(子益), 호는 삼연(三淵). 증조할아버지는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며, 어머니는 해주 목사 나성두(羅星斗)의 딸인 안정 나씨(安定羅氏)이다.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金昌集)과 예조판서·지돈령부사 등을 지낸 김창협(金昌協)이 형이다. 김창흡(金昌翕)[1653~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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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9년 간행된 포천 출신의 문인이자 화가인 이인상의 문집. 이인상(李麟祥)[1710~1760]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인이자 화가이다. 본관은 전주, 자는 원령(元靈), 호는 능호관(凌壺觀)·보산자(寶山子)이다. 이경여(李敬輿)의 현손이다. 1735년(영조 11) 진사에 급제하였으나 증조할아버지 이민계(李敏啓)가 서자였기 때문에 본과에 이르지 못하고, 음보(蔭補)로 북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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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1년 이경석이 금강산을 유람하러 가는 길에 포천에 이르러 조경에게 보낸 칠언 율시의 한시. 「도포천(到抱川)」은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1595~1671]이 1651년 유배에서 풀려난 후 금강산 유람차 길을 가던 중에 포천에 이르러, 당시 한양 조씨(漢陽趙氏) 가문의 향리(鄕里)인 포천 가채리에 은거하고 있던 일장(日章) 조경(趙絅)에게 지어 보낸 한시이다. 이경석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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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인 성해응이 전국 명승지를 설명한 책. 성해응(成海應)[1760~1839]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본관은 창녕, 자는 용여(龍汝), 호는 연경재(硏經齋)이다. 성대중(成大中)의 아들이고, 진사 이덕로(李德老)의 외손이다. 1788년(정조 12) 규장각 검서관으로 임명되었고, 이덕무(李德懋)·유득공(柳得恭)·박제가(朴齊家)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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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1년 김창협이 금강산을 유람하기 위해 포천을 지나고 지은 기행문. 「동유기(東遊記)」는 조선 후기의 문신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1651~1708]이 금강산을 유람하려고 길을 떠난 후 포천을 지나고 나서 여행의 감회를 적은 글이다. 「동유기」는 김창협의 문집 『농암집(農巖集)』 권(卷) 23에 수록되어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금강산(金剛山)의 명성을 듣고 늘 한번 유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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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간행된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인 정기안의 시문집. 정기안(鄭基安)[1695~1767]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로 초명은 사안(思安), 자는 안세(安世), 호는 만모(晩慕)이다. 아버지는 정유신(鄭維新)이고 아들은 정만석(鄭晩錫)이다. 1728년 문과에 급제하고 사헌부 지평, 사간원 정언 등을 역임하였으며, 1752년(영조 28) 동지사 겸 사은사의 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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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0년 김시습이 영평현을 지날 때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모투영평현(暮投永平縣)」은 조선 전기의 문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 날이 저물자 영평현으로 들어가면서 느낀 감흥을 적은 한시이다. 「모투영평현」은 김시습의 문집 『매월당집(梅月堂集)』 권(卷) 10에 수록된 「유관동록(游關東錄)」에 수록되어 있다. 「유관동록」은 김시습이 관동(關東)[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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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문인이자 서예가인 양사언의 시집. 양사언(楊士彦)[1517~1584]은 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문인이자 서예가이다. 본관은 청주, 자는 응빙(應聘), 호는 봉래(蓬萊)·완구(完邱)·창해(滄海)·해객(海客)이다. 아버지는 주부 양희수(楊希洙)이다. 1546년(명종 1) 문과에 급제하여 대동승(大同丞)을 거쳐 삼등·함흥·평창·강릉·회양·안변·철원 등 8고을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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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2년 간행된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인 김창흡의 시문집. 김창흡(金昌翕)[1653~1722]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자익(子益), 호는 삼연(三淵)이다.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자이자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셋째 아들, 이단상(李端相)의 문하이다. 과거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친명(親命)으로 응시하여 1673년(현종 14) 진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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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영리를 목적으로 한 물품 매매업. 18세기 중엽까지는 농촌과 도시의 재화 유통이 주로 당사자 간의 직접 교환에 의한 물물 교환이 주를 이루었다. 이어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까지는 상행위가 전문화하는 단계였고, 이와 함께 모든 산업은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하였다. 20세기 독점 자본주의 단계에 돌입하자 자본주의의 제반 모순이 격화되어 종래의 영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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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0년 김시습이 영평현을 지날 때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숙포천인가(宿抱川人家)」는 조선 전기의 문신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 풍악산[금강산]을 향해 가던 중 날이 저물자 영평현으로 들어가 민가에서 묵으며 느낀 감흥을 적은 한시이다. 「숙포천인가」는 김시습의 문집 『매월당집(梅月堂集)』 권(卷) 10에 수록된 「유관동록(游關東錄)」에 수록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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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종교. 한국의 신종교는 서세 동점과 일제 침략, 그리고 해방 이후 근대화 및 산업화의 격동기에 출현하였다. 종교적인 성격과 함께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사회 운동의 성격을 보였다. 유사 종교, 사이비 종교, 신흥 종교 등으로 불리며 폄하되기도 했지만, 경멸적이고 이탈적인 의미 때문에 보다 중립적이고 객관성을 띤 신종교라는 용어가 일반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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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년 성현이 포천 안기역의 중수를 기념하여 지은 기문. 「안기역 중수기(安奇驛重修記)」는 조선 전기의 문신 용재(慵齋) 성현(成俔)[1439~1504]이 경기도 포천현에서 북쪽으로 2㎞ 정도 떨어져 있는 안기역[현재 경기도 포천시 신읍동]을 중수(重修)[건축물이 낡고 헌 것을 손질하며 고침]하고 이를 기념하여 지은 글이다. 「안기역 중수기」에서 성현은 찰방(察訪) 윤지(尹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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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는 양반 사회였다. 따라서 양반은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 양반을 사대부(士大夫)라고도 하는데, 이는 사(士)와 대부(大夫)를 통칭한 말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朴趾源)은 소설 「양반전」에서 “글을 읽는 사람을 선비[士]라 하며, 벼슬길에 나아가서 대부(大夫)가 된다.”라고 하였다. ‘선비’란 벼슬하지 않고 글을 읽으며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풀이할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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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문인, 서예가.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응빙(應聘), 호는 봉래(蓬萊)·완구(完邱)·창해(滄海)·해객(海客). 고조할아버지는 공조 전서 양진팔(楊振八)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황해도 절도사 양치(楊治)이다. 할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양제달(楊悌達)이며, 아버지는 돈령부 주부 양희수(楊希洙)이다. 형 양사준(楊士俊), 아우 양사기(楊士奇)와 함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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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 포천 지역의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 개관. 포천 지역은 한탄강을 따라 서북 지역 또는 한강 하류 지역과 연결되고, 추가령 지구대를 따라 동북쪽으로 주민의 이동로가 펼쳐져 있다. 사방으로 교차적인 위치에 있어서 문화적인 교류가 많았다는 것이 선사 시대의 문화상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포천의 선사 문화는 한강의 상류 지역과 서해의 도서 지역, 동해안의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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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읍동에 있는 원불교 교당. 원불교 포천 교당에서는 1998년 11월 정부의 햇볕 정책의 일환으로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면서 비롯되었다. 1999년 신년 하례 때 정릉 교당의 좌산 종법사의 “포천 지역에 선교소를 설립하라”는 뜻을 받들어 선교소 설립 기금 1억 원을 모금하였다. 통일된 뒤에 북한 지역 선교의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목적에서였다. 1999년 4월 포천 선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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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예술인.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원령(元靈), 호는 능호관(凌壺觀)·보산자(寶山子). 고조할아버지는 영의정 이경여(李敬輿)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이민계(李敏啓)인데, 이민계는 이경여의 서자(庶子)였다. 이인상(李麟祥)[1710~1760]은 조선 후기 시(詩)·서(書)·화(畵)를 갖춘 대표적인 문인 예술가로,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서 1710년에 태어났다. 학통은 김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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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 조병현이 포천을 향해 아침에 출발하며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조발향포천(早發向抱川)」은 1819년(순조 19) 조선 후기의 문신 성재(成齋) 조병현(趙秉鉉)[1791~1849]이 금강산(金剛山)을 유람하러 가는 길에 송우리에서 포천을 향해 아침 일찍이 출발하면서 지은 한시이다. 「조발향포천」은 조병현의 문집 『성재집(成齋集)』 권(卷) 4에 수록되어 있다. 권4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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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활동한 항일 비밀 결사대. 조선 민족 해방 협동당은 일제가 패망하는 결정적 시기에 국외의 항일 무장 세력의 진공에 호응하여 국내에서 민중의 무장봉기를 통한 민족 해방 쟁취를 위하여 결성되었다. 1943년 6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메이지[明治] 대학 출신 김종백(金宗伯)을 당수로 하여 학병 거부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조선 민족 해방 협동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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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순소(舜韶), 호는 소하(小荷). 고조할아버지는 조엄(趙曮)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조진관(趙鎭寬)이다. 할아버지는 조만영(趙萬永)이며, 아버지는 조병준(趙秉駿)이다. 조병구(趙秉龜)에게 입양되었다. 추존 왕인 익종(翼宗)의 비인 신정 왕후(神貞王后) 조씨(趙氏)의 친정 조카이다. 첫 부인은 이호준(李鎬俊)의 딸인 우봉 이씨(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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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인들의 조직적 활동. 경기도 포천시는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의정부시 등과 인접하여 외지인 및 외래문화의 유입과 수용이 활발한 곳이다. 따라서 지역 주민보다 주로 다른 지역 사람이 종교 단체를 이용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그러나 아직도 마을마다 산신제를 지내는 등 전통적인 문화나 관습의 영향력이 강한 편이다. 1. 소흘읍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에는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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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양사언이 자신의 고향 집인 평망정을 소재로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평망정(平望亭)」은 포천 출신의 문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평망정을 보고 자신의 고향 집을 찾아온 감회를 노래한 한시이다. 양사언의 자(字)는 응빙(應聘), 호(號)는 봉래, 해객(海客), 완구(完邱), 창해(滄海) 등이다. 본관은 청주(淸州)로 남사고(南師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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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7년 조경이 포천 기곡의 봉화가 타오르는 것을 보고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포천기곡봉화(抱川機谷烽火)」는 1657년(효종 8) 71세 때 포천에 은거한 용주(龍洲) 조경(趙絅)[1586~1669]이 포천 기곡에서 봉화가 밤마다 타오르는 것을 보고 느낀 감회를 노래한 한시이다. 조경은 자(字)가 일장(日章)이고, 호(號)는 용주, 주봉(柱峯), 간옹(鬝翁) 등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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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창흡이 포천 길에서 금강산 스님을 만나 지은 오언 절구의 한시. 「포천도상 우풍악승(抱川途上遇楓嶽僧)」은 조선 후기의 문인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1653~1722]이 포천으로 가는 길에 풍악산[금강산]의 승려를 만나서 지은 한시이다. 김창흡의 자(字)는 자익(子益), 호(號)는 낙송자(洛誦子), 삼연 등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시호는 문강(文康)으로 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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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년 허균이 금강산을 유람하고자 포천을 지나는 길에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포천도중(抱川道中)」은 1603년(선조 36)에 조선 후기의 문신 성소(惺所) 허균(許筠)[1569~1618]이 풍악산[금강산]을 유람하려고 집을 떠나 포천을 지나는 길에 지은 한시이다. 허균의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 성소이다. 본관은 양천(陽川)이고, 권필(權韠)[1569~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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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덕수가 포천으로 가는 길에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포천도중(抱川道中)」은 조선 후기의 문신 서당(西堂) 이덕수(李德壽)[1673~1744]가 포천으로 가는 도중에 지은 한시이다. 이덕수는 자를 인로(仁老), 호는 서당, 벽계(蘗溪)라 했다. 본관은 전의(全義)이고, 시호는 문정(文貞)으로, 박세당(朴世堂)[1629~1703]의 문인이다. 1696년(숙종 22) 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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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박윤묵이 금강산을 유람하고자 포천을 지나는 길에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포천도중(抱川途中)」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존재(存齋) 박윤묵(朴允默)[1771~1849]이 금강산을 유람하려고 집을 떠나 포천을 지나는 길에 지은 한시이다. 박윤묵은 초명이 지묵(趾默)이고, 자는 사집(士執), 호는 존재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정이조(丁彛祖)의 문인으로, 천수경(千壽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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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에서 1838년까지 조인영이 포천으로 가는 길에 추위를 탈 정도로 찬바람이 불 즈음에 우연히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포천도중(抱川道中)」은 1830년(순조 30)부터 1838년(헌종 4) 사이에 조선 후기의 문신 운석(雲石) 조인영(趙寅永)[1782~1850]이 포천으로 가는 도중 찬바람이 심하게 불어 추위를 탈 때에 뜻하지 아니하게 지은 한시이다. 조인영은 자가 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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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0년에서 1774년 사이 김익이 포천으로 가는 길에 처음으로 기러기 소리를 듣고서 지은 오언 절구의 한시. 「포천도중문초안(抱川道中聞初鴈)」은 1770년(영조 46)에서 1774년(영조 50)까지 조선 후기의 문신 죽하(竹下) 김익(金熤)[1723~1790)이 경성 판관으로 포천으로 오고 가는 도중에 처음으로 기러기 소리를 듣고서 느낀 감회를 노래한 한시이다. 김익은 자가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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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있는 대순 진리회의 수도장. 대순 진리회에는 도장[수도장], 회관, 포덕소(布德所)라는 3개 단위의 포덕[선교] 센터가 있다. 도장은 여주 본부 도장을 비롯하여 포천 도장, 중곡동 도장, 금강산 도장, 제주 도장 등 5개이다. 도장은 대순 진리회 신앙 대상을 모신 영대가 있는 곳을 일컫는다. 포천 수도장은 1992년 당시 포천군 포천읍 선단리[현 포천시 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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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채팽윤이 네 명의 비구를 포천 장거리에서 만나서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포천장거리 봉사비구(抱川塲巨里逢四比丘)」는 조선 후기의 문신 희암(希庵) 채팽윤(蔡彭胤)[1669~1731]이 신천에서 개골산[금강산]으로 들어간다는 네 명의 비구를 포천 장거리에서 만나서 지은 한시이다. 채팽윤은 자가 중기(仲耆)이고, 호는 희암, 은와(恩窩)이다. 본관은 평강(平康)으로 오광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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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채팽윤이 포천 들녘에 있는 정자를 소재로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포천정자야(抱川亭子野)」는 조선 후기의 문신 희암(希菴) 채팽윤(蔡彭胤)[1669~1731]이 포천의 어느 들녘에 있는 정자에서 지은 한시이다. 채팽윤은 자가 중기(仲耆)이고, 호는 희암, 은와(恩窩)이다. 본관은 평강(平康)으로 오광운(吳光運)[1689~1745], 이덕수(李德壽)[1673~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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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8년 오재순이 금강산 유람을 위해 포천의 송우, 만세교, 백로주 등을 지나면서 쓴 기행문. 「해산일기(海山日記)」는 1748년(영조 24) 조선 후기의 문신 순암(醇庵) 오재순(吳載純)[1727~1792]이 금강산(金剛山) 유람을 위해 포천을 지나며 송우(松隅), 만세교(萬歲橋), 백로주(白鷺洲) 등을 들리며 기록한 기행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한양에서 금강산 유람을 하고 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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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년 김창업이 포천을 향해 가는 도중에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향포천도중(向抱川道中)」은 1702년(숙종 28) 조선 후기의 문신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1658~1721]이 포천을 향하여 가는 길에 지은 한시이다. 「향포천도중」은 김창업의 문집 『노가재집(老稼齋集)』 권(卷) 2에 수록되어 있다. 차로평생주기순(此路平生走幾廵)[이 길을 평생 동안 몇 번이나 다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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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4월 3일 포천 출신의 유학자 최익현이 친구들과 금강산 유람 중에 들린 화적연을 소재로 하여 지은 한시. 「화적연(禾積淵)」은 1882년(고종 19) 4월 3일에 포천 출신으로 개항기의 애국지사인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1833~1906]이 여러 친구들과 함께 금강산(金剛山)을 향하여 떠나는 길에 화적연에 들러 지은 한시이다. 「화적연」은 최익현의 문집 『면암집(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