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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036
한자 新宗敎
분야 종교/신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기도 포천시
집필자 박경자

[정의]

경기도 포천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종교.

[개설]

한국의 신종교는 서세 동점과 일제 침략, 그리고 해방 이후 근대화 및 산업화의 격동기에 출현하였다. 종교적인 성격과 함께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사회 운동의 성격을 보였다. 유사 종교, 사이비 종교, 신흥 종교 등으로 불리며 폄하되기도 했지만, 경멸적이고 이탈적인 의미 때문에 보다 중립적이고 객관성을 띤 신종교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한국에서는 1860년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하면서 신종교가 시작되었다. 동학은 조선 봉건 사회의 해체 과정에서 꾸준히 성장한 민중 의식의 확대와 서구 제국주의 세력의 침입에 따른 위기의식, 그리고 유불선 등 기성 종교의 구제 능력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어 1905년 일제의 침략 이후 격심한 사회 변화와 가치 변동에 따른 새로운 의미의 추구, 사회 불안에서 오는 안심입명의 획득 등의 복합적인 요인으로 천도교·대종교·증산교[보천교]·원불교 등의 신종교가 창시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들 신종교가 민족 항쟁의 구심점 역할도 하였다.

우리나라 신종교 운동의 성격은 6·25 전쟁을 분기점으로 크게 변화하였다. 6·25 전쟁은 전국에 전화의 상처를 남겼고, 대규모의 피난과 집단 이주를 초래하여 전통적 가치 체계의 해체를 촉진시켰다. 특히 인구의 도시 집중으로 가족주의적인 권위주의에 기반을 둔 농촌형 신종교 운동이 점차 쇠퇴하고 도시형 신종교 운동이 확산되었다. 1960년대부터 대도시에 포교 근거를 삼은 증산교 계통의 여러 분파가 대표적이다.

해방 이후에 등장한 기독교계 신종교들은 기독교 특유의 메시아니즘과 종말론, 그리고 토착 사상의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1950년대 말부터 크게 활동을 전개해 온 세계 평화 통일 가정 연합(世界平和統一家庭聯合)인 통일교도 이러한 계열에 속한다. 이런 신종교들은 처음부터 도시에서 출발하였다. 공통점은 산업 구조의 취약성으로 만성 실업 상태에 있는 도시민에게 심리적 소속감을 제공하고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도록 하는 기능을 하였다.

[포천 지역의 신종교]

경기도 포천지역의 신종교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일제 강점기 포천 지역에는 이종학(李鐘學)·정태순(鄭泰舜) 등이 주도한 청림교(靑林敎)가 있었다. 청림교의 종교 의식은 천도교나 시천교와 유사하였다. 교리에는 “새로운 지혜와 바른 생각을 발휘하여 교조가 선포한 무극(無極)의 대도(大道)를 깨치면 극락세계에 들어가는데, 5만 년 후에는 수운 대신사(水雲大神師) 최제우가 개벽의 창세주로 군림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신종교가 발견되지 않는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 신종교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부터이다. 대표적인 신종교가 대순 진리회이다. 대순 진리회는 1969년 박한경(朴漢慶)이 창시한 종교로서 증산교 계통의 종단 중에서 교세가 가장 크다. 경기도 여주군에 본부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포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대순 진리회는 도장, 회관, 포덕소라는 3개 단위의 포덕[선교]센터가 있다.

도장은 여주 본부 도장을 비롯하여 포천 도장, 중곡동 도장, 금강산 도장, 제주 도장 등 5개이다. 도장은 대순 진리회 신앙 대상을 모신 영대가 있는 곳을 일컫는다. 포천 도장은 포천읍 선단리(仙壇里) 왕방산(旺方山) 남쪽 산록에 자리하고 있다. 선단리는 예부터 신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祭壇)이 있었다고 한다. 포천 수도장은 풍수적으로 금강산·설악산·오대산·태백산의 양기맥(陽氣脈)이 뻗어오고 삼각산·도봉산의 음기맥(陰氣脈)이 치받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길지라고 한다. 대순 진리회는 교육 사업으로 1984년 1월 학교 법인 대진 학원을 설립했으며, 1992년 3월에는 경기도 포천에 대진 대학교를 개교하였다.

[여호와의 증인]

그 다음으로 여호와의 증인을 꼽을 수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1912년 홀리스트 선교사가 내한하여 문서 전도를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 1939년 일제의 신사 참배를 거부하여 많은 신도가 구속당하고 교세가 쇠퇴하였다. 해방 이후 다시 재건되어 1952년 사단 법인 워치 타워 책자 협회를 설립하고 가정 전도의 방식으로 『파수대』, 『깨어라!』 등의 책자를 보급하고 있다. 현재는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에 본부를 두고 있다. 목사나 전도사 등의 교직 제도는 없으며 각 회중(會衆)의 장로에 의해서 목회가 수행된다.

현재 서울·부산·대구 등 3개 선교부가 있으며 전도 봉사부 밑에 50여 개의 회중이 있다. 경기도 포천시에는 영북면 운천리를 비롯하여 군내면 하성북리, 소흘면 송우리, 일동면 기산리 등 4개의 회중이 있는데 이를 왕국 회관이라 칭한다. 운천리 왕국 회관의 신도 수는 100명을 넘지만, 다른 지역의 신도 수는 50명 내외이다. 운천리의 왕국 회관의 신도 수가 많은 이유는 태국군과 미군 부대 주둔 당시에 건립되어 40년 넘게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도는 타지 사람들로 집회가 있을 때에만 모인다. 이들은 활발한 전도보다 자신들의 회중을 유지하고 종교 집회를 가지는 것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원불교]

원불교는 1916년 소태산 박중빈이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대각하고,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파란 고해(波瀾苦海)의 일체 생령을 광대 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개교하면서 비롯되었다. ‘원불교’란 교명은 해방을 맞이하고 소태산의 유시에 의해 제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가 개칭한 것이었으며, 1947년 4월에 재단 법인 원불교의 등록을 필한 후 공포되었다.

원불교가 포천에 언제 들어왔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1998년 11월 정부의 햇볕 정책 일환으로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면서 원불교 포천 교당이 설립되었다. 1999년 신년 하례 때 정릉 교당이 좌산 종법사의 “포천 지역에 선교소를 설립하라”는 뜻을 받들어 선교소 설립 기금 1억 원을 모금하였다. 통일된 뒤에 북한 지역 선교의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목적에서였다.

같은 해 4월 포천 선교소 건립 위원회를 구성한 후 박덕수 교무와 한성문 회장이 10여 차례 포천을 방문, 부지를 물색하여 4월 24일 경기도 포천군 신읍리 127-22번지의 부지 244㎡[74평]를 매입하였다. 2001년 3월 29일 신자연 교무와 교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신축 기공식을 거행하여 9월 3일 준공하였다. 준공 후 정릉 교당 교도들이 3차에 걸쳐 출장 법회를 했고, 2002년 1월 7일 전중원 교무가 초대 교무로 부임하여 교당의 면모를 갖추고 봉불하게 되었다.

[천부교와 통일교]

천부교와 통일교는 6·25 전쟁과 잇따른 전후의 혼란기 속에서 한국의 개신교계에 열광적이고 종말론적인 신앙 운동이 전개되면서 비롯되었다. 이는 철저하게 내세적이고 가혹할 정도로 체험적 감각적 신앙 경험을 요구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경기도 포천 지역의 천부교에는 1970년 말까지 상당히 많은 신도가 모여서 집회를 가졌고, 영북면 운천 7리에 전도관 건물도 세워졌다.

통일교는 1954년 문선명이 서울에서 창시한 신종교인데 1957년 교리서 『원리 강론(原理講論)』을 완성시켜 교리의 체계를 갖췄다. 통일교는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를 신령과 진리로 통일하여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하나님의 창조 이상을 이 땅에 실현할 것을 목적으로 하여, 세계 각국에서 선교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경기도 포천에 통일교가 언제부터 들어왔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현재 영중면 영교리에 통일 교회가 들어서 있다.

[국제 창가 학회]

이외에도 국제 창가 학회[Soka Gakkai International]가 들어왔으며 SGI로 약칭하기도 한다. SGI는 불교에서 파생된 일본 종교의 한 계파로 『나무묘법연화경』을 경전으로 하며 일본식 발음으로 남묘호렌게쿄[남묘호랑개교]라고 한다. 2011년 9월 21일 ‘한국 SGI의 날’ 21주년을 기념하여 한국 SGI 포천 평화 문화 회관이 문을 열었다. 경기 제6방면 포천권[권장 박창수] 회원의 활동 거점으로 지역 사회에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포천권은 경기도 의정부시 일부, 경기도 포천시, 강원도 철원군 일대를 아우른다. 포천 평화 문화 회관은 주민과 함께 하는 열린 음악회와 소단위 문화 행사, 세미나, 전시회 등의 공간이 되고 있다. 또한 생활 강좌 등을 비롯해 지역 주민을 위한 사회봉사의 거점이 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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