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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도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1955
한자 抱川道中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병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771년 - 「포천도중」 저자 박윤묵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849년 - 「포천도중」 저자 박윤묵 사망
성격 한시
작가 박윤묵

[정의]

조선 후기 박윤묵금강산을 유람하고자 포천을 지나는 길에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개설]

「포천도중(抱川途中)」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존재(存齋) 박윤묵(朴允默)[1771~1849]이 금강산을 유람하려고 집을 떠나 포천을 지나는 길에 지은 한시이다.

박윤묵은 초명이 지묵(趾默)이고, 자는 사집(士執), 호는 존재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정이조(丁彛祖)의 문인으로, 천수경(千壽慶)[?~1818], 왕태(王太), 최면(崔沔), 지석관(池錫觀) 등과 교유했다. 1790년(정조 14) 규장각에서 교정 일을 시작하여, 정조의 지우(知遇)를 받았다. 1831년(순조 31) 경복궁 위장, 그 후 영희전 전감, 혼전도감 별간역(別看役)을 지냈다. 1835년(헌종 1) 별간역으로 수고한 공으로 특별히 평신진(平薪鎭) 첨사(僉使)가 되었고, 1880년(고종 17) 호조판서에 추증되었다.

「포천도중」박윤묵의 문집인 『존재집(存齋集)』 권(卷) 14의 시(詩)에 수록되어 있다. 『존재집』은 26권 13책인데, 이것은 박윤묵이 생존 시에 이미 상당 부분 편차가 이루어진 자편고(自編稿)를 바탕으로, 저자 사후에 아들들이 만년의 작품들을 보충 정리하여 완성한 것이다.

[내용]

수로금강동부동(首路金剛東復東)[길을 떠나 금강산의 동쪽에서 동쪽으로]

차행정시어령풍(此行正是御泠風)[바야흐로 서늘한 바람 거느리고 가는 이 길.]

일공쌍극투한제(一筇雙屐投閒際)[지팡이 하나, 짚신 두 짝을 휴식 틈에 던져두니]

만수천산득의중(萬水千山得意中)[첩첩한 산하가 마음에 들어오네.]

인거수능회절계(人去誰能淮折桂)[사람이 떠나니 누가 급제할 수 있겠는가]

추래편애초다풍(秋來偏愛楚多楓)[가을이 오니 편애(偏愛)에 지는 단풍이 많구나.]

황금백벽오하용(黃金白璧吾何用)[금은보화가 나에게 무슨 소용이랴.]

약도선구흥불궁(若到仙區興不窮)[선계(仙界)에 닿으면 흥취는 무궁하리.]

[특징]

박윤묵은 주로 서정적인 시들을 많이 지어 “맑고 깨끗하며 참신하다.”, “간결하고 정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포천도중」도 현실에 연연하지 않는 작자의 호방한 기운이 담겨 있다. 창화(唱和)하던 인물로 보아 천수경, 왕태, 노윤적(盧允迪), 장혼(張混)[1759~1828], 김낙서(金洛瑞) 등 송석원(松石園)을 중심으로 모이던 여항 시인(閭巷詩人)들과 교유하였으며, 후반기에는 지석관의 칠송정(七松亭)에서 모이던 시인들과도 활발하게 교유하였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1815년(순조 15)과 1838년(헌종 4) 금강산을 유람한 기록으로 보아 이때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만년에는 고양 청담리 분암에서 대부분 거처하였고, 사후에 그곳에 묻혔다. 박윤묵은 특히 시와 글씨로 이름난 여항 시인으로, 오랫동안 규장각에서 서리로 봉직하면서 많은 서적의 간행에 참여하였으며, 같은 여항 시인인 왕태와 함께 정조의 사랑을 받았다. 종이, 붓, 먹, 벼루, 술을 비유한 5편의 가전도 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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