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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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조직된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의 경기도 포천 지역 지부.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는 조국의 완전 독립을 달성할 때까지 강력하면서도 영구적인 조직체를 만들 목적으로, 기존의 반탁(反託) 운동 단체인 이승만(李承晩) 중심의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와 김구(金九) 중심의 신탁 통치 반대 국민 총동원 중앙 위원회가 통합하여 1946년 2월에 발족했으며 이승만이 총재, 김구가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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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국 직후 설립된 대한 청년단의 경기도 포천 지역 지부. 대한 청년단은 8·15 해방 이후 국내 지지 기반이 필요했던 이승만(李承晩)에 의해 1948년 12월 19일 우익 청년 단체인 대동 청년단을 중심으로 청년 조선 총동맹·국민회 청년단·대한 독립 청년단·서북 청년회 등 전국 20여 개의 청년 단체를 통합하여 결성되었다. 이어 각 지역별 단부가 세워졌는데, 대한 청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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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도평리에 있는 1954년 6·25 전쟁 당시 포천 탈환의 성공을 기려 세운 탑. 포천 일대는 1951년 1월 중공군의 3차 공세로 피탈되었다가 3월 24일 유엔군의 반격 작전으로 수복하게 되었다. 미 제3사단은 호킨스 특수 임무 부대를 편성하여 의정부, 포천으로 진출하였으나 중공군 제26군의 완강한 저항을 받아 치열한 접전을 수행하였다. 중공군은 의정부 북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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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자는 동석(東石), 호는 낙삼(樂三). 조선 시대 세종(世宗)의 아들 광평 대군(廣平大君)의 17대손으로 아버지는 화사(華史) 이재하(李在夏)이다. 이범영(李範英)[1890~1955]은 1890년 10월 6일 경기도 포천군 가산면 방축리[현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신문학을 접하였으며 1908년 서울 보광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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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에 묘가 있는 정치가. 장면(張勉)[1899~1966]의 호는 운석(雲石)으로, 인천광역시에서 출생하였다. 8세에 인천 성당에서 운영하는 박문 학교(博文學校)에 입학, 한학을 수학하였다. 1917년 수원 고등 농림 학교[서울 대학교 농업 생명 과학 대학 전신]를 졸업하였다. 1919년 YMCA 영어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1925년 한국 천주교 청년회 대표 자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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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현대적인 의미에서 한국의 정치는 해방 후 대의제를 근간으로 자유 민주주의가 형성된 이후를 의미하며, 포천의 정치 역시 제1공화국의 등장 이후 지역 중앙 정치와 지역 내적인 지방 자치의 결합으로 전개되고 있다. 1.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 해방과 함께 한반도는 미·소 양국에 의해 3·8선이 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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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조직된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의 경기도 포천 지역 지부.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는 1946년 민족주의 정당들로 구성되었던 국민운동 추진 단체로 1946년 2월 8일 서울 인사동에서 이승만(李承晩)의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와 김구(金九)의 신탁 통치 반대 국민 총동원 위원회가 통합하여 발족하였다. 발족 당시 채택한 선언문에는 “단조(檀祖)의 성혈(聖血)이 얽히고 가갸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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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경기도 포천 지역에 조직된 지역 언론 단체. 포천 기자단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직후에 결성되었던 우익 청년 운동 단체인 대한 청년단의 사무실에서 조직되었다. 따라서 포천 기자단은 당시 우익 청년 단체인 대한 청년단과 같은 뜻을 가진 지역 언론인들로 조직된 것으로 보인다. 대한 청년단은 1948년 12월 19일 좌익계 청년 단체들의 통합체인 민주 청년 동맹(民主靑年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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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있는 1954년 미군이 중공군을 공격하여 포천 일대를 탈환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6·25 전쟁 당시 포천 일대는 1950년 6월 25일부터 10월, 1951년 1~3월 두 차례 걸쳐 북한 점령 하에 있다가 1951년 3월 24일 유엔군의 반격 작전으로 1951년 3월 완전히 수복되었다. 중공군 공세에 미 제3사단은 호킨스 특수 임무 부대를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