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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국민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589
한자 抱川國民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신대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51. 1. 10연표보기 - 포천 국민회 결성
최초 설립지 포천 국민회 - 포천군
성격 정치 단체
설립자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정의]

1946년 조직된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의 경기도 포천 지역 지부.

[개설]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는 1946년 민족주의 정당들로 구성되었던 국민운동 추진 단체로 1946년 2월 8일 서울 인사동에서 이승만(李承晩)의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와 김구(金九)의 신탁 통치 반대 국민 총동원 위원회가 통합하여 발족하였다.

[설립 목적]

발족 당시 채택한 선언문에는 “단조(檀祖)의 성혈(聖血)이 얽히고 가갸의 문자로 연하는 3000만 명의 동포의 혼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 몇 가지를 엄숙히 선언하였다. ① 우리는 대한의 완전 자주 독립을 위하여 최후까지 싸울 것을 선언함. ② 우리의 운동은 정당·정파를 초월한 순연(純然)한 국민운동임을 선언함. ③ 우리는 남북과 좌우의 통합을 기하여 사상적으로나 지역으로나 통일 완수를 위하여 사력을 다할 것을 선언함.”이라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가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을 위한 국민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설립된 정치 단체임을 알 수 있다.

[변천]

국민회 발족 당시 총재는 이승만이었고, 부총재는 김구였다. 중앙 조직을 끝내고 전국의 시·도·군까지 지부 조직을 확대하는 등 정당이 아닌 국민운동 단체로서 방대한 조직이 형성되었다. 경기도 포천에서도 국민회 지부에서 동위원회 결의로 역원 중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개선하고, 1950년 1월 10일 각 면 지부장 회의에서 인준을 받았는데 위원장에 이교완, 부위원장에 안창호·박성룡이 선출되었다. 한편 1953년 7월 28일 포천 국민회에서는 지방 유지, 사회단체, 각 면 대표 등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군청 회의실에서 국민회 강화 대회를 개최하고 임원을 개선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는 민족 통일 총본부·민족 대표자 대회 등 이승만 계열의 우익 국민운동 조직으로 변화되면서 남한 단독 정부를 추진하는 이승만의 지지 세력이 되었다. 포천 국민회에서도 같은 목적의 정치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1953년 7월 28일 임원을 개선하여 지부장에 채민석, 부지부장에 윤주순·이기우, 총무과장에 이재풍, 건설과장에 이주훈, 문화과장에 이주협, 감찰 위원에 이중악이 선출되었다.

[의의와 평가]

포천 국민회에서는 당시 전국적으로 조성된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지부로서의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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