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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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堂山里昌寧成氏烈女閣 |
영어공식명칭 | Changnyeong Seongssi Yeollyeogak in Dangsan-ri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한풍루로 373[당산리 730-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최범호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 있는 개항기 창녕성씨의 열녀각.
[개설]
열녀 창녕성씨(昌寧成氏)는 유풍렬(柳豊烈)의 아내이다. 남편이 산에 올라갔다가 호랑이를 만나 물려 죽게 되자, 마을 장정 수십 명이 몰려갔으나, 성난 호랑이의 울음소리에 놀라 감히 달려들지 못하였다. 창녕 성씨가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가자 호랑이가 감동하여 슬그머니 남편을 놓고 달아나 버려 남편의 시체를 수습하여 돌아왔다. 당시 임신 중이던 창녕 성씨는 배를 가리키며 “내가 만일 남자아이를 낳으면 유씨 가문에 대를 잇게 할 것이고, 만일 그렇지 못하면 마땅히 남편을 따라 죽을 것이다”라고 맹세하였다. 그 뒤 창녕성씨는 여자아이를 낳게 되어 7일째 되는 날 밤 틈을 타서 물에 빠져 죽었다. 그 이튿날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일어나더니 홀연히 고운 빛의 무지개가 물 가운데서 일어나 마을 앞을 가로질러 뻗치었다. 그 시신을 물에서 건져 내고 보니 창녕성씨가 살았을 때의 모습이 완연하였다고 한다. 1891년(고종 28)에 정려를 내렸다.
[위치]
당산리 창녕성씨 열녀각(堂山里昌寧成氏女閣)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 원당산 마을 입구에 있다. 무주 공용 버스 터미널에서 당산 삼거리 방향으로 300m 직진한 후에 당삼 삼거리에서 당산길로 우회전하여 70m 이동하면 우측에 위치한다.
[변천]
1891년에 열녀로 명정되었고, 1892년(고종 29)에 정각이 건립된 이래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정면 1칸[200㎝], 측면 1칸[200㎝]의 홑처마 맞배 기와지붕의 정려각이 있고, 그 안에 정려 현판이 있다. ‘열녀 학생 유풍렬지처 유인 창녕성씨지려 상지이십구년 임진 사월 일 명정(烈女學生柳豊烈之妻孺人昌寧成氏之閭上之二十九年壬辰四月日命旌)’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황]
원당산 마을 입구에 담장이 둘려진 안에 당산리 유경제 효자각(堂山里柳景堤孝子閣)과 당산리 창녕 성씨 열녀각이 있고, 오른쪽 앞에 유인성(柳寅誠)의 효행을 기린 화은 유처사 효행비(華隱柳處士孝行碑)가 있다. 문화 유씨(文化柳氏)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