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297 |
---|---|
한자 | 安仁里 |
영어공식명칭 | Ani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안인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기혁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안인리(安仁里)는 상동면의 남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은 밀양강을 사이에 두고 금산리, 가곡리와 마주 보고 있어 동쪽으로 열려 있는 지형을 이루고 있다. 서쪽으로 부북면과 접하고 있으며 남쪽에는 밀양시 교동이 있다. 북서쪽은 옥산리와 경계를 이룬다. 구곡과 포평, 신안, 매일의 4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명칭 유래]
안인리의 지명은 신안(新安)과 회인(會仁)의 합성에서 비롯되었다. 회인은 안인리의 중심 마을인 구곡마을의 다른 이름이다. 조선 후기 이전에는 구칠(九柒)로 불렀다 한다. 조선 광해 때 박안세(朴安世)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회우보인(會友輔仁)의 미속이 행해져 지명을 바꾸었다 전한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회인동’,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1832]에는 ‘구곡리’ 지명으로 수록되어 있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경상남도 밀양군 상동면 안인리로 개설되었다. 1995년 1월 1일 밀양군과 밀양시 통합으로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안인리가 되었다.
취락은 대부분 옥교산 동쪽 산록에 형성되어 있으며 괴촌 형태로 나타난다. 포평마을은 하천 연안의 평야 가운데 있다. 중심 마을인 구곡마을 앞의 공가들(孔家들)은 고려시대 곡부공씨가 살았다는 데서 비롯된 지명이라 한다. 조선 중종 때 창녕조씨와 창원구씨가 입촌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신안마을에는 조선 후기 밀양박씨가 들어오고 이후 밀성손씨가 입촌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신원리는 임진왜란 이후 옥산리에 있던 금곡원이 폐지되고 원이 옮겨 오면서 비롯된 지명이다. 이로 인하여 이전에 가곡과 금산리 평릉으로 이어지던 영남로 경로가 구곡마을의 나루를 거치는 경로로 바뀌었다.
[자연환경]
안인리의 서쪽은 옥교산[538.4m]에서 옥교봉[570m]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남북으로 이어져 밀양강까지 임박하여 있다. 전체 지세는 동쪽으로 열려 있어 서고동저의 지형을 이룬다. 서쪽 산지에서 구곡천과 신안천이 동쪽으로 흘러 밀양강으로 유입하며 유역에 침식 분지를 이룬다. 동쪽의 밀양강 유로는 넓은 충적지를 이룬다. 하천의 곡류가 시작되는 지점에는 빈지소(빈池沼)가 있다. 원래 빈주소(빈洲沼)로 불렀으나 이후 변음된 것이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408세대, 718명[남자 340명, 여자 37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안인리의 농업은 밀양강 연안에 연하여 형성된 넓은 충적지에서 행해지고 있다 벼농사를 위주로 하며 시설농업이 함께 영위된다. 경부철도가 안인리의 동쪽을 따라 부설되어 있다. 빈지소를 중심으로 상동빈지소유원지가 조성되어 있다. 한편 빈지소 서쪽에 경부선 철도 노선 경로가 바뀌면서 생겨난 옛 터널은 마을의 저온 창고로 쓰이기도 한다.